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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둘레길/서해랑길(2024진)

서해랑길52코스(새창이다리-만경낙조전망대-진봉면사무소-망해사-심포항)

by 山頂 2024. 12. 30.

서해랑길52코스(새창이다리-만경낙조전망대-진봉면사무소-망해사-심포항)

 

▣ 트래킹 일시 : 2024년12월28일. 토 . 날씨 : 눈

▣ 트래킹 참여 : 거인산악회 서해랑길팀

 서해랑길52코스(새창이다리~심포항)주요지점및 QR위치

    <주요지점>

  새창이다리-4.5km-만경낙조전망대-7.1km-진봉면사무소-5.3km-망해사-1.5km-심포항

    <QR위치>

    - 시점 : 전북 군산시 대야면 복교리 302-21(새창이다리)

    - 종점 :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1502(심포항회전교차로부근)

서해랑길52코스(새창이다리~심포항)교통편

    - 거인산악회 서해랑길팀 전용버스 이용

   ※ 대중교통 이용시

     - 시점 : 군산시외버스터미널(36,37번 버스)→신촌 하차 도보150m

     - 종점 : 김제역에서 18-1, 19-1번 버스 이용, 안하 하차 도보600m

서해랑길52코스(새창이다리~심포항)트래킹 기록

     - 두루누비따라가기 기록 : 19.47km/ 4시간 59분

     - 오록스맵 기록 : 19km / 4시간58분(09:47~14:46) 

 

서해랑길52코스(새창이다리~심포항)록스맵 트랙

서해랑길52코스(새창이다리~심포항)산정__20241228_0947.gpx
0.27MB

 

서해랑길52코스(새창이다리~심포항)지도

서해랑길52코스(새창이다리~만경낙조전망대~진봉면사무소~망해사~심포항)트레킹 메모

 

2024년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적으로

정말로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내게 되는 끝자락에 도달해 있는데.....

 방송매체나 언론보도 그리고 옳고 틀림을 주장하는 다양한 표출

어수선한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외교, 안보상황등으로

소시민인 우리 민초들의 마음은 어디에 둬야 하는지.... 

 올 겨울들어 기온도 많이 내려가 가장 추울거라는 예보와 서해안 지역의

폭설예보까지 있어 심란하지만 그래도 응어리져 있는 마음을 

지평선이 드넓게 펼쳐지는 서해랑길을 걸으며 훌훌 털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해를 마무리 하고 싶어 새벽에 첫 전철을 타고 사당역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걷게될 서해랑길 52코스의 역방향 트레킹은 새창이다리 북단에서 시작하여

다리를 건너 만경강변을 따라 심포항까지 약19km를 걷게 되었는데

새창이 다리에 도착하니 더럽고 추한 세상의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덮어놓은 

하얀눈과 바람도 없고 따뜻한 햇볕으로 포근하게 느껴지는 기온에 발걸음

가볍게 서해랑길 52코스 걷기를 시작 합니다.

09:47     서해랑길52코스의 끝지점인 새창이다리 북단에서

역방향으로 진행하기전 오늘 참석한 회원들과 단체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걷게되는 서해랑길52코스의 끝지점이자 서해랑길53코스의 시작 지점의

안내판앞에서 역방향으로 진행하여 심포항으로 향하게 됩니다.

새창이 다리는 전북 군산시 대야면 복교리 와  전북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를

연결하는 다리로 이부근은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신창진(新滄津)이란 포구 였으며

이곳은 군산으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김제평야에서

수확한 쌀을 가져가기 위해 만든 나루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교통량이 많아지자

1933년에 세멘트로 다리를 놓았으며 이다리를 '새창이다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후 세월이 지나며 다리는 노후화로 사고와 붕괴의 위험속에 교통량이 늘어나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1989년도에 옆쪽에 '만경대교'를 신설하여 개통하였고

'새창이 다리'는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

서해랑길 52코스의 역방향 진행은 새창이 다리 북단에서

다리를 건넌후 우측으로 휘어져 만경강변을 따라 걷게 됩니다.

새창이 다리 북단에서 서해랑길52코스를 시작하며 인증 사진 하나 남깁니다.

새창이 다리를 건너는 좌측으로는 만경대교가 보입니다.

새창이 다리를 1933년 개통한후 세월이 지나며 다리는 노후화로 사고와

붕괴의 위험속에 교통량이 늘어나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1989년도에 옆쪽에

'만경대교'를 신설하여 개통하였다. 만경대교는 군산시 대야면 복교리와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를 연결하는 국도 29호선 상의 다리이다

새창이다리를 건너는 우측으로는 만경강위에 놓인  '청하대교'가 보입니다.

새창이 다리의 중간 지점을 지나면 다리위에 많은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네요

새창이다리 남단에 도착합니다.

새창이 다리는 당시 1933년10월7일자 동아일보 3면에

 다리의 총장이 1,386척이며 총공사비 252,830원 이라

 보도 되었다고 합니다.

새창이 다리를 건너면 서해랑길은 새창이다리밑을 지나서

동지산리의 동지산나루터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새창이다리를 건너면 전북 군산시 청하면 동지산리(東芝山里)로 바뀐다

 '동지산리' 라는 마을 이름은 마을 앞쪽에 있는 동지산(東芝山)에서 따왔으며

조선 말기 만경군 북일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산리, 궁동리, 척산리, 내실리, 내토리, 대신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지산리라 하고

김제군 청하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1월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가 되었으며, 자연마을로 척산(尺山)·내신(內新)·궁동(弓洞)

동지산·연봉(蓮峰)·동촌(東村)·시장(市場)·신창(新倉)·갈산(葛山) 등이 있다.

만경대교가 놓이기 전에 김제·군산·옥구를 오가는 동지산 나루터를 중심으로 주막과

시장이 형성되어, 장날이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상업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나룻배 몇척이 정박해 있는 새창이 나루터를 지납니다.

 예전에 신창진(新倉津)이 있던 포구를 지나는 길에 표지석을 만난다.

 군산으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김제평야에서

수확한 쌀을 가져가기 위해 만든 나루터였다고 한다. 

동지산리의 만경강변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도

많은 눈이 내려 하얀 설국으로 만들어 놓았네요

동지산리 갈산마을앞의 강변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앞쪽으로 보이는 '청하대교' 방향으로 걷습니다.

서해랑길은 계속해서 만경강변으로 이어지는 '갈산길'을 따라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와 군산시 대야면 복교리를 연결하는

29번 도로가 만경강위를 가로지르는 "청하대교" 아래를 지납니다.

청하대교를 지나면 서해랑길은 청하1제방길을 만나게 되고.

제방길 위로 줄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이 카메라에 포착되네요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청하제방길은 자전거 도로가 조성되어 있고

간밤에 내린 눈이 억새와 갈대 그리고 나무에 하얀꽃을 피웠네요

청하1제방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농업용수리시설을 만나고

서해랑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갑니다.

배수문 좌측으로는 김제시 만경읍 소토리와 청하면 장산리에

걸쳐 있으며 만경강 하구의 평야지대 가운데 솟아 만경강을

굽어 보고 있는  '입석산(▲63m)'도 보이네요

청하방조제를 지나 우측으로 휘어지면

김제시 만경읍 소토리에 위치해서 '소토방조제'라 불리는 곳을 지납니다.

만경읍 화포리 율산과 이어지는 구릉 일대에 자리 잡은 소토리는

동북쪽으로 만경강(萬頃江)이 서해와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까닭에

갯벌이 발달하여 소토제방을 쌓기 전에는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며

간척이 이루어진 뒤부터 마을들이 규모를 갖추기 시작하였을듯 하다.

추울줄 알고 두껍게 껴입은 옷이 거추장 스러워 정자에서 한꺼플 벗겨 낸다. 

정자에 오르니 진행방향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정자 우측편의 만경강 건너편으로는 지난구간에 걸었던

군산의 청암산과 군산시 회현면쪽 풍경까지 보이네요

두꺼운 옷 한꺼플 벗겨내고 정자를 나오는데...

소팀장이 렌즈가 길고 큰 카메라로 사진을 찍네요

다시 소토제방위를 걸어 낙조 전망대 방향으로 갑니다.

아주 어렸을적 농촌의 시골집앞 밭에 심었던

목화밭에 꽃이 활짝피어 있는 풍경이 연상 되는 길 위에 있으니

햇볕도 기온도 또  풍경이 좋아 쉼없이 걸어도 피곤하지 않네요

제방길 좌측편으로 낙조전망대인 '만경정'이 보이네요

앞서간 회원님들은 그냥 지나쳐 가는데...

낙조전망대에서 펼쳐지는 풍경이 궁굼해 만경정으로 오릅니다.

10:43   팔각정자의 '만경정'에 오릅니다.

 언덕 위의 팔각형 정자의 전망대에 오르면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고

유유히 흐르는 만경강의 물줄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탁 트인 평야와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금빛 노을이 환상적인 풍경을 그려내는듯 합니다.

해가질 무렵이면 눈부신 붉은 해가 신비롭게 하늘을 물들이며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움이 그림같고

그 아름다움 때문에 만경8경중 제1경에 속한다고 하네요 

만경8경중 제1경은 '만경낙조'라고 합니다.

만경강과 바다가 만나 소중한 생명을 품고 수많은 철새가

반기는 곳으로 강변을 따라 이어진 갈대와 낙조가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조망 공간 이기 때문이라네요

낙조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만경강과 그 건너편의  군산의 청암산 좌측이 옥구면

낙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수 있는 포토존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만경정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와

서해랑길을 이어갑니다. 서해랑길은 좌측으로 휘어지며

만경읍 화포리 앞을 지나게 됩니다.

우측편으로는 오늘 날머리 부근의 이성산과 진봉산도 보이네요

비포장의 화포리앞 제방길을 걷습니다.

만경대낙조전망대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가면

좌측전방으로 나즈막한 조양산(▲21.1m)이 보이는

 화포리를 지나게 됩니다.

서해랑길은 제방길끝의 농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조양산 아래로 이어지는 화포방조제위의 농로를 따라 걷습니다.

농로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나가면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를

지나게 되는데...화포리는 진묵대사(震默大師)가 태어난 곳이라 하여

불개·불거(佛居)·불포(佛浦)라고도 불렸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부처 ‘불(佛)’자를 불 ‘화(火)’자로 바꾸어 화포(火浦)가 되었다고 한다.

마을 앞으로 지평선까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 만경강이

드넓은 서해로 흘러든다. 자연마을로 화포·창자(昌子)·장흥(長興)·

주행산(舟行山)·토정(土亭) 등이 있다. 

11:07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 있는 '평산신씨의 충효열 정려'를 만납니다.

비문에는 이러한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평산신씨(平山申氏)는 만경의 하일도 진관포 어부의 딸(신성녀)로 태어나

농촌 출신인 경주이씨(慶州李氏) 이독금(李禿金)의 처가 되었는데,

시아버지는 맹인이었고 시어머니는 앉은뱅이였다.

평산신씨는 팔자가 기구하여 남편마저 일찍 여읜 10대의 청상과부로서

시부모를 봉양하게 되었다. 그 딱한 처지를 보다 못한 친정 부모가 딸이

과부로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음을 불쌍히 여겨 개가시키려고 하였다.

이에 평산신씨는 “내가 본래 빈천한 집 딸로 개가하는 데는 부끄럼이 없지만

시부모가 늙고 병들어 다른 자녀의 봉양도 없는데 어찌 개가하느냐”며

한사코 뿌리치고 평생 시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하여 수절하였고
시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지성을 다하여 봉양한 후 일생을 마치자

나라에서 효부 열녀비를 세워 주었다고 한다.

평산신씨충효열정려각 옆에 화포마을 표지석이 있고

앞쪽으로 곧게 뻗은 '화포로(2차선)'를 잠시 따라 걷게 된다.

서해랑길은 화포리 마을표지석에서 화포로(2차선)를 따라

약150m쯤 걷다 우측으로 휘어져 농로를 따라 가게 됩니다.

2차선 도로에서 우측으로  들어서면 화포리의 자연마을인 토정마을의 

드넓은 벌판의 비포장 농로를 걷게 되는데... 농로는 눈이 녹은면서

질척거리고 간간히 물이 고여 있네요. 농로 앞쪽으로는 몽산(40.1m)

몽산(夢山) 밑에 있는 김제시 만경읍 몽산리 마을이 보입니다.

몽산리는 만경강(萬頃江)과 서해가 만나는 간석지가 있어 간척이 이루어졌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간척 사업을 벌여 논과 염전을 만들었는데

몽산리의 바다와 가까운 몽포 북서쪽에 뒷간사지라고 불리는 곳이 염전 자리였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원래는 산이 없었는데 어떤 도인이 꿈을 꾸고 깨어나니

산이 생겨서 몽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마을 지형이 소가 누워 꿈을 꾸는 모습이어서

우몽산(牛夢山)이라 부르던 것이 줄어서 몽산(夢山)이 되었다고도 한다.

토정벌판 끝에서 앞쪽에 수로가 있는 삼거리에 닿고

삼거리 좌측으로 가면 몽산리인데...서해랑 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수로를 따라 김제시 진봉면 상궐리로 접어들고

전방으로 보이는 수로위의 다리를 건너게 됩니다.

수로를 건너기 직전에는 사각정자 쉼터가 설치되어 있네요

수로위의 흰눈이 덮혀 있는 나무다리를 건넙니다.

수로위의 나무다리를 건너면 만나는 이정표

우측 3.8km방향에 진봉면 사무소가 있다고 알려 주네요

이곳에서 서해랑길은 이정표 뒤쪽의 수로를 건넌후

우측으로 휘어져 수로를 따라 상궐리 벌판을 지나게 됩니다.

수로를 우측에 두고 김제시 진봉면 상궐리 벌판을 지나는 농로를 따라 걷습니다.

억새와 키큰 풀이 농로 양옆으로 보초 처럼 서 있네요

비포장이라 땅은 질척거리고 물도 고여 있어 걷는것도 불편하고

등산화와 바지도 지저분하게 되어갑니다.

지금 걷고 있는 벌판의 농로는 김제시 진봉면 상궐리 지역으로 

옛날 들판 가운데 있었던 기와집이 유난히 돋보인다 하여 와촌 또는 기와물이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고사리가 많이 나는 지역으로 고사리 밭인

궐전(蕨田)을 중심으로 위쪽을 상궐(上蕨), 아래쪽을 하궐(下蕨)이라 하였다고 한다.

1872년에 제작된 지방군현도에 따르면 상궐리 대부분이 바다였다.

1920년대에 본격적으로 상궐리 일대에 간척 사업이 진행되어 낮은 구릉을

 제외하고는 마을 대부분이 해안가의 낮은 평야 지대로 변모하였다.

간척사업을 하면서 만들어진 수로가 많은 벌판이여서

작은 수로를 간간히 건네게 되네요. 우측으로 상궐리 마을이 보입니다.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휘어져 넓은 수로를 따라 갑니다.

좌측으로는 상궐리 마을이 보이고 우측에는 수로를 두고 

넓은 농로를 따라 서해랑길을 이어갑니다.

11:41   관기방조제가 있는 수로를 따라 걷습니다.

농로 좌측으로 보이는 눈덮힌 상궐리 마을 풍경

관기방조제가 있는 곳에서 수로가 급 좌측으로 휘어져 갑니다.

수로와 같이 좌측으로 휘어지는 수로변의 농로를 따라 서해랑길을 진행합니다.

작은 수로를 건너서 우측으로 휘어져 넓은 수로를 따라 갑니다.

작은수로를 건너 우측으로 휘어진 농로 앞쪽으로는

김제시 진봉면 면소재지인 고사리 마을 풍경이 보입니다.

고사리 마을이 보이는 수로 끝쪽의 배수문이 보이고...

서해랑길은 배수문 부근에서 좌측 진봉면 고사리 마을로 들어서게 됩니다.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마을에 들어섭니다.

고사리(古沙里)는 왕봉산 국사봉 밑에 자리잡은 마을로 만경강(萬頃江)이

서해와 만나는 진봉반도(進鳳半島) 북쪽 해안 지대에 자리 잡은 마을로

만경강을 사이에 두고 군산시 옥구읍·회현면과 이웃하고 있다.

해안 구릉지에 고사리에서 가장 높은 나성산(60.9m)이 솟아 있고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서쪽 심포리에 봉화산(82m)과 진봉산(72m)이 있다.

해안의 구릉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평지이며, 만경읍 능제(菱提)저수지 에서

이어지는 관개 수로를 이용해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옛날 왕봉산에 오래된 절이 있어 고사(古寺)로 불리다가 절 사(寺)를

 모래 사(沙)로 바꾸어 고사(古沙)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자연마을로는 고사, 인향, 석치, 석소, 신석소, 관기, 평동, 신고사 등이 있다.

12:05    고사리 마을에 들어서 조금 걸으면 사각의 정자를 만나게 되는데..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간간히 쏟아지는 눈을 피해 식사를 하고 있어 

나역시 준비해온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식사를 하며 약15분 정도

머물러 쉬었다 갑니다.

만경강(萬頃江)이 서해와 만나는 진봉반도(進鳳半島) 북쪽 해안 지대에

자리 잡은 고사리 마을은 만경강을 사이에 두고 군산시 옥구읍·회현면과

이웃하고 있다. 맛있게 점심을 해결하고 쉼을 가졌던 고사리 마을의 정자를

출발하여 약2분쯤 걸으면 만나는 사거리에서 직진의 '진봉교회' 방향이 아닌

우측으로 휘어져 '고사교회'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독도주의 할곳)

우측으로 휘어지면 '고사교회'가 보입니다.

고추 수확을 하지 않은 건지...? 

고추밭의 빨간 고추에 흰눈이 덮혀있어

예쁜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곳을 지납니다.

고추밭을 지나면 고사교회 정문앞에 닿고

우측으로 휘어져 고사교회 담장을 휘돌아서

'석소방조제' 방향으로 향합니다.

앞쪽으로 사각정자가 보이고... 그 뒤로 일직선으로 뻗은 '석소방조제'가 보입니다.

방조제 끝에 작은 산이 보이는곳의 마을이 '고사리'의 자연 마을인 석소 마을입니다.

기온도 차겁고...간간히 눈발이 날리고 있는 수로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낚는지...세월을 낚는지...

추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모습이 존경스럽네요

김제는 본래 호남평야의 중심을 이루는 넓은 평야지대였지만

일본이 식량 수탈을 목적으로 간척 사업을 실시하여 진봉방조제를

쌓아 1,928ha의 농경지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방조제는 1924년 준공되어 진봉지구와 심포지구로 구분

관리하여 왔으며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심포리, 상궐리일대

1,075ha로서 관개 시설에서 물을 공급받는 땅의면적이 957ha이다.

지금 걷고 있는 이곳은 진봉면 고사리 지선으로 석소방조제라 부른다. 

석소방조제 끝에 닿으면 석소배수문을 만나고

서해랑길은 직진의 대나무가 밀집해 있는 야산을 휘돌아 간다.

고사배수문 뒤쪽의 마을에 '석소경로당'건물이 보입니다.

고사리의 석소마을은 고사마을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질 좋은

숫돌이 나와 나라에 바치게 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숫돌이 나오는지는 알 수가 없네요

석소배수문을 지나 대나무 우거진 야산을 휘돌아서면

또  사각정자와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고사리 석치마을에 있는

'석치방조제'에 닿게 됩니다.

석치제방 좌측으로 보이는 석치마을 풍경

고사리의 자연마을인 '석치(石峙)'는 '인향(仁香)' 동쪽에 있는 마을로

1525년경 평산신씨가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돌고개를 넘어서 나룻배를 타고 옥구를 왕래한 데서

마을 이름을 돌고개의 한자 표기인 석치(石峙)라 하였다. 

석치제방 끝의 뒤쪽으로는 니성산(▲62m)이 보이고

산아래로는 고사리의 인향(仁香)마을이 자리하고 있네요

인향(仁香)은 고사 동쪽에 있는 마을로 1584년경 형성되었으며

예부터 어진 사람이 많이 나와 마을이 평온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의 귀감이 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석치방조제 좌측의 논에는 까마귀떼들이 가득하네요

흰눈이 논바닥을 덮고 낯선 불청객이 지나고 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는듯.

불청객이 지나도 숫자로 압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꿈적도 않아

짖궃은 생각에 소리를 질러 놀래켜 봅니다.

그렇치만 잠시 하늘로 날아 올랐다가 다시 논 바닥에 내려 앉네요

12:54     석소방조제끝에는 배수문과 무인감시카메라탑이 높이 솟아 있네요

서해랑길은 우측으로 보이는 정자를 지나게 됩니다.

정자앞에는 이정표가 팔벌려 가야 할 길을 알려 주네요

오늘 새창이다리에서 시작한 서해랑길과 똑 같은 길을

심포항까지 걷게 되는 '새만금 바람길' 이정목도 보입니다.

정자를 지나 우측으로 돌아나가면 만경강의 고수부지에 잠시 닿게 됩니다.

강바닥을 잠시 지나면 나목이 되었던 나무들이

하얀 옷으로 꽃단장을 하고 나그네를 반기는듯한

'니성산(尼城山:62m)'임도를 걷게됩니다.

니성산을 휘돌아가는 서해랑길은 산을 오르지 않고

만경강이 보이는 북쪽 사면을 지나게 됩니다.

흰눈에 덮혀 있는 호젓한 니성산의 산길...

겨울이지만 푸근한 느낌의 감정들이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주네요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산길을 내세상인양 마음껏 즐기며 걷습니다.

고사마을 삼거리 갈림길에 닿고

서해랑길은 직진의 전선포1.0km 방향으로 갑니다.

고사리마을 갈림길을 지나면 서해랑길은 국사봉(×61.3m)자락과 연결됩니다.

비포장의 임도길에서 좌측 산으로 오르는 급경사 계단을 만납니다.

계속해서 가파른 계단길은 대나무가 흰눈에 덮혀 있는 산을 오릅니다.

흰눈에 덮혀있는 대나무숲의 산길을 올라서면

새만금 바람길 안내도(현위치)를 만나고 

내 위치와 가야할 방향을 확인하고 갑니다.

대나무숲이 우거진 곳을 우측으로 진행하고

산사면의 허리아래쪽을 오르내리며 눈덮힌 

국사봉( 國事峰:×61.3m) 산길을 걷습니다.

국사봉은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에 위치한 산으로

진봉반도의 육지 끝자락에 니성산과 진봉산 사이에 있다.

국사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전선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 삼거리에서 우측의 전선마을 방향으로 갑니다.

13:28       서해랑길은 국사봉자락에서 정상을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서면 전선포구가 있었던 곳에

제방을 만들은  '전선포제방'에 닿게 됩니다.  

전선포는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포구로

 지금의 해군기지와 같은 군항(軍港)으로서, 고려 후기에는 왜구와

접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전선포 서쪽에 봉수대가 있어

정박한 전선들과 수시로 연락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만경강 입구에

위치해 있어 전라도를 적군으로부터 지켜내는 요새였으나

지금은 ‘전선포’라는 작은 팻말을 세워 둔 것이 전부이다.

전선포 제방위를 걸으며 우측으로 바라본

만경강과 군산시 옥구읍과 회현면쪽 풍경

전선포 제방끝의 배수문을 지나고

서해랑길은 우측의 강바닥으로 내려갑니다.

전선포 제방끝의 배수문 앞에 있는 이정표와 전선포 설명판

서해랑길은 직진의 망해사1.0km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산과 연결되는 전선포 제방끝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어

직진으로 오르지 못하고 우측의 만경강 바닥으로 휘어져 갑니다.

전북1000리길 스템프 투어 함이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곳을 지나고

강바닥에 돌들이 많아 여기 저기 작은 돌탑이 쌓여져 있는 곳을 지납니다.

오색의바람개비가 터널 처럼  만들어져 붙어 있는 철제 조형물을 지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만경강의 고수부지위의 길에는

불어오는 바람에도 돌지 않는 바람개비가 멋진 풍경을

연출하며 줄지어 서 있네요

강바닥을 걷던 서해랑길이 다시 고도를 올리며 진봉산 자락으로 향하고

만경강이 조망되는 사진찍기 좋은 녹색전망대에 닿게 됩니다.

전망대에 오르면 만경강과 강건너 군산시 옥구읍쪽 풍경이 들어옵니다.

지금은 간간히 눈발이 날리고 있어 시야가 뿌옇게 보이는게 아쉽네요

전망대에서 잠시 조망을 즐기고 길을 나서면

서해랑길과 망해사 갈림길 입구에 닿습니다.

서해랑길은 좌측 진봉산으로 오르고

망해사를 가려면 우측으로 내려가는 도로 인데..

 잠시 시간을 할애해 '망해사'로 향합니다.

망해사 입구의 머리에 하얀눈이 덮혀 있는 '부도탑'을 지납니다.

부도는 입적한 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하고 있는 곳으로

이곳의 탑신에는 만화당(萬花堂),심월당(心月堂),청심당(淸心堂),

덕유당(德有堂)이라고 당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13:58      망해사(望海寺) 사찰의 전경 입니다.

망해사는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11년(671년)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이곳에 와 사찰을 지어 수도한 것이 시초였다. 그뒤 중국 당나라 승려

중도 법사가 중창하였으나 절터가 무너져 바다에 잠겼다.

조선시대인 1589년(선조22) 진묵대사가 망해사 낙서전을 세웠고

1933년 김정희 화상이 보광전과 칠성각을 중수했다.

진봉산 고개 넘어 각은듯이 세워진 기암괴석의 벼랑위에 망망대해를

내려다 보며 서 있어 이름 그대로 망해사(望海寺)이다.

중앙에 보이는 천망은 2024년4월 발생한 화재로 망해사의 극락전이 전소되면서 

현재는 임시로 천막을 설치해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망해사 경내로 들어서면 좌측에 종무소가 있는 '요사채'를 만납니다.

왼쪽 처마에는 聽潮軒(청조헌) 가운데는 望海寺(망해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이건물은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채이자

사찰의 행정 업무를 맡는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종무소 앞쪽으로는 산위쪽으로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끝에 삼성각이 보이네요

삼성각은 사찰에서 산신()·칠성()·독성()을 함께

모시는 당우로 삼성 신앙은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져 생긴 신앙 형태라고 합니다.

2024년4월 발생한 화재로 망해사의 극락전이 전소되어

임시 설치되어 있는 천막법당 옆으로 낙서전(樂西殿)이 있습니다.

서해바다를 즐긴다라는 의미의 낙서전 편액이 걸려 있으며 정면3칸

측면3칸의 주심포 형식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낙서전은 선조22년에

진묵스님이 처음 지은 것으로 1933년과 1977년에 고쳐 지었다.

신라 문무왕11년 부설거사가 처음 세웠다고 하는데 그때의 절은 땅이

 무너져 바다에 잠겼다고 합니다. 낙서전은 평면이 ㄱ 자 형으로

건물 한켠에는 마루를 놓고 그위에 근래에 만든 종을 걸었다.

다른 켠에는 방과 부엌이 딸려 있어 건물이 법당 겸 스님의 거처로 사용

하였고 모양이 불규칙한 나무 기둥으로 세워 자연미를 짙게 풍긴다.

1986년 9월 8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낙서전 옆에는 팽나무 두그루가 서해바다를 향해 서 있는데

진묵대사가 낙서전을 창건한 기념으로 심었다고 전해집니다.

망해사 범음각

"바람의 종 세번 치세요"

"그대의 바람이 온 법계(우주)에 울리도록..."

범종각 안쪽에 불전함이 놓여 있으며  기금은 진봉면 

결손가정 아동을 위하여 쓰여진다고 하네요

범종각 오른쪽으로는 5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네요

망해사에서 바라본 만경강이 서해에 흘러드는 풍경

망해사를 둘러보고 다시 서해랑길로 복귀하여

넓은 도로를 따라 진봉산으로 향합니다.

진봉산 입구로 들어서면 좌측으로 

눈속에 잠들어 있는 듯한 '두곡서원'이 보입니다.

두곡서원(杜谷書院)은 성리학자 강원기(1423~1498)의

거처가 있던 곳으로 배향되어 있는 사람은 포은 정몽주

봉호당 문헌공 강원기, 난계 함부림 등이다.

성리학자 강원기는 야은 길재, 정몽주와 더불어 경전을 읽어

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그가 경원과 은성 두고을의 수령으로

있을때 충성과 효도의 길을 가르쳐 주는 '이존록'이라는 책을

만들어 집집마다 나누어 주기도 했다고 한다.

태조때 좌부승지에 제수 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만경현에

정착해서 이곳의 세가지 폐단을 고쳐주어 주민들의 고충을 

풀게 되었으며, 그후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두곡서원'을

세우고 배향하였다고 합니다.

두고서원을 내려다보고 진봉산으로 들어서면

애국지사 남촌 곽경렬선생 추모비를 만나게 됩니다.

곽경렬 선생은 일제강점기 국내와 만주에서 활약을 펼친 독립운동가로

1915년 항일 비밀결사 대한광복회()에 가담하여

친일 부호 처단, 일본 헌병소 무기탈취, 군자금 모집 등의 활발한 활약을

하였으며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곽경렬 선생 추모비를 지나 넓은 보도블럭의 길을 오르면

3층으로 지어진 진봉산 '망해대'에 닿게 됩니다.

진봉산의 망해대에 오르면 서쪽과 서남쪽은 망망대해요,

동쪽은 우리나라 제일의 곡창 새만금만경평야가 아스라이 다가오고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올망졸망한 낮은 산들이 눈을 가득 채운다.

건너편 심포산 정상에는 고려시대에 축조하여 연기와 횃불로 적의 침입을

 알렸던 봉수대가 있고, 심포산 북쪽 바닷가에 심포항이 위치하고 있다.

북쪽은 미녀봉(美女峰), 그 건너편에 국사봉이 있고 그 아래에는 옛날

전함이 주둔하던 수군(水軍) 기지인 전선포(戰船浦)가 있다.

눈발이 간간히 날리고 있어 시야가 좋치 않으나

망해대에 올라 만경강 하구의 심포항과

서해가 맞닿는 풍경을 조망 합니다.

망해대에서 바라본 진봉산 정상부 풍경

망해대에서 바라본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쪽 풍경

망해대에서 바라본 만경강과 강건너 군산시 옥구읍쪽 풍경

망해대에서 멋진 풍경을 배경 삼아 포즈를 취해 봅니다.

요런 포즈도 취해 보고

앉은 포즈도 ...

망해대에서 조망을 즐긴후 보도블럭이 깔려 있는

등산로를 따라 진봉산(▲73.2m)정상으로 향합니다.

14:25   모악지맥의 끝자락인 진봉산 정상의 준.희님이 걸어 놓은

산패가 있는 곳에 닿습니다. 등로에서 약간 벗어나 있네요.

진봉산(進鳳山▲75m )은 전북 김제시의 진봉면 심포리에 위치한 산으로

모악지맥의 끝자락에 있는데...약4년전 모악지맥 산행때 올랐었다.

남쪽은 낮은 산들이 연이어 있으며, 건너편 심포산 정상에는 고려 시대에

축조한 봉수대가 있다. 북쪽은 미녀봉(美女峰), 그 건너편에 국사봉이 있고,

아래에는 옛날 수군(水軍) 기지였던 전선포(戰船浦)가 있다.

망해사를 다녀와 진봉산을 들어설때 핸드폰의 밧테리가

완전 방전되어 오록스맵이 작동이 안되었던 것을  진봉산 정상에서

알게 되어 보조밧테리를 연결하고 걷기를 이어갑니다.

진봉산 정상에서 눈이 덮혀 있어 미끄러운 가파른 계단을 내려갑니다.

계단을 지난후에는 완만한 능선길을 내려가고

진봉산에서 심포제방이 있는 심포리로 내려섭니다.

심포제방에 내려서면 '김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만나고

심포제방 위로 만들어진 심포6길 2차선 도로가 생기면서

상가가 몇개 자리하게 된 심포리 마을을 지납니다.

심포리(深浦里)는 전북 김제시 진봉면에 속해있는 마을로

조선 말기 만경군 하일도면에 속했던 지역이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제군 진봉면에 편입하였고 1995년 1월 1일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가 되었다. 지리적으로 김제시 북서쪽 최북단 진봉반도

끝부분에 자리 잡아 좌우로 만경강(萬頃江)과 동진강(東津江) 하구를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예부터 충청도와 전라도로 들어오는 외적을

쉽게 막을 수 있는 군사 전략상 중요한 요새지였다. 

봉화산(82m)에는 봉수대를 설치하여 외적들의 움직임을 한양까지

알렸던 흔적이 남아 있다. 심포리의 위치가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바닷가였기 때문에 예부터 포구로 이용 되었으므로

깊은개 또는 짚은개라 하였고 심포(深浦)는 깊은개의 한자 표기라고 한다.

교통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는 심포제방끝이 보입니다.

14:46  서해랑길 52코스의 시작점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걷기를 종료 합니다.

오늘 걸었던 거리가 19km였고, 4시간58분이 소요 되었네요

서해랑길52코스 안내판 우측으로 주차장이 있고

그 뒤쪽에 자그마하고 소박해 보이는 심포항이 있습니다.

심포항은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만경강 하구에 있는 항구로

수천만 평에 이르는 심포 갯벌의 배후 항구로 드넓은 갯벌에서 채취하는

조개 집산지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심포백합(생합)은 지역 특산물로

인기가 높은 고급 조개이다. 몇 년 전까지 심포 갯벌은 체험 학습 장소로

많이 활용되었다. 예전에는 어업권으로 인해 외부인들의 조개 채취가

엄격하게 제한되었지만,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보상이

마무리되어 누구든지 조개를 잡을 수 있다.

 최근에는 새만금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바닷물 반입이

줄어들어 갯벌이 많이 쌓이고 수면에 얇은 기름막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만경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생활하수로 인해 방조제가 막히면서

심포항에 축적되고 있어 고깃배들은 포구 인근 바다에 들어오면 바다와

통하는 입구를 막고 산소를 공급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싱싱한 활어를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최근 약 20년 동안 진행된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인해

심포리 앞 갯벌과 바다가 방조제 안쪽의 내수면지가 됨으로써 예전 포구의 모습을

잃어 가고 있다. 앞으로 간척 사업이 끝나면 이곳 주민들의 생업도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심포항의 경우 이미 포구로서의 기능이 약화되어

보상금을 받은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고향을 떠나기도 하였다고 한다.

서해랑길 52코스를 걸었던 회원들이 모두 도착한후에

군산시로 이동하여 2024년을 보내는 아쉬움에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송년회를 갖기로 하였다.

송년회 장소는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하여 음식점을

만들어 운영하는 '옹고집'이라는 곳이였고.

소병대 팀장이 그간 서해랑길을 빠짐없이 참석한 조효행님외15분에게

개근상장과 예쁜 상품을 수여하는 뜻 있는 자리였습니다.

교실 입구

입구에 들어서면 좌측으로 교장실과 화장실이 보이고

우리의 송년회 장소는 2학년 교실이다.

메뉴는 '쌈박정식' 이였고...

모자라는 음식은 계속 보충 되었다.

맛있게 식사하시는 회원님들

맛있게 식사하시는 회원님들

송년회를 무사히 끝내고 18:00에 옹고집 음식점을 출발하여 

차량의 정체현상 없이 3시간도 안걸려 사당에 무사히 도착하였네요

다음날 서해랑길52코스 후기를 작성하는 중에 

태국을 출발하여 전남 무안공항에 도착하던 여객기가 렌딩기어고장으로

무안공항활주로에 안착하지 못하고 담장과 부딪히는 불상사가 났다는 속보

방송을 접하게 되었네요... 2024년의 끝자락에서 항공기 참사를 당하여

생을 마치고 하늘에 별이 되신 179명의 명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