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49코스(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구암리지석묘-매창공원-부안군청)걷기
▣ 트래킹 일시 : 2025년01월19일. 토 . 날씨 : 맑음
▣ 트래킹 참여 : 나홀로
▣ 서해랑길49코스(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부안군청)거리및 QR위치
<주요지점및 거리> = 19km
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7.3km-구암리지석묘-8.4km-매창공원-3.3km- 부안군청
<QR위치>
- 시점 : 전북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 부안재생에너지테마파크
- 종점 : 전북 부안읍 동중리 부안군청
▣ 서해랑길49코스(부안재생에네지테마파크~부안군청)교통편
<시점교통>
- 06:50 서울센트럴시티 고속버스 출발 → 09:45 부안터미널도착
- 10:10 부안터미널 출발(농어촌버스100번) → 10:28 신촌.문수정류장 도착
- 10:28 신촌.문수정류장(도보)출발 → 10:44 부안재생에너지테마파크 도착
<종점교통>
- 15:03 부안군청 출발(도보) → 15:17 부안터미날 도착
- 16:10 부안터미날 출발(고속버스) → 19:15 서울 센트럴시티 도착
▣ 서해랑길49코스(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부안군청)트래킹 기록
- 두루누비따라가기 기록 : 19.05km/ 04시간18분(10:45~15:03)
- 오록스맵 기록 : 19.03km / 4시간18분(10:44~15:04)

▣ 서해랑길49코스(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부안군청)오록스맵 트랙
▣ 서해랑길49코스(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부안군청)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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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49코스(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공원~부안군청)트레킹 메모
거인산악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서해랑길49코스 일정이 2월8일(토)로
예정되어 있는데 그 날이 아버님 기일이라 참석을 못할것이 예상되어
미리 나홀로 서해랑길 49코스 트레킹에 나서게 되었으며 서울에서 부안을
오가는 교통편과 부안에 도착 시점과 종점을 오가는 것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서울 센트럴시티에서 06:50에 출발하는 부안행 첫 버스로 2시간55분 후인
09:45에 부안터미날에 도착하여 10:10에 부안터미널을 출발하는 격포방향의
농어촌 버스 100번을 타고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의 '백련' 정류장에 내려 도보로
약8분정도 걸어 서해랑길49코스의 시점인 '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에서
종점인 '부안군청'까지 순방향으로 19km 걷기를 하였는데
지금까지 걸었던 방식인 역방향으로 걷지 않는것은 종점인 '부안군청'을 출발해
시점인 '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에서 걷기를 마치는 오후 시간에는
'부안터미널'로 이동하는 농어촌 버스의 운행이 별로 없어 이용하기 어렵고
서울행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택시를 타야 할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오늘 부안터미널앞에서 출발한 농어촌 100번 버스는 정류장 도착 안내방송이 없어
초행길이라 잘 모르니 '백련'정류장에 내려 달라고 기사님께 부탁을 하였더니
100번 버스는 '백련'정류장은 서지 않는다고 하며, 차를 잘못 탔다고 하네요
그리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백련'정류장을 지나 한정거장 더간 '신촌.문수'
정류장에서 내려줘 약16분을 도보로 '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에 도착합니다.
부안군청 홈페이지에서 분명히 확인하고 대중교통을 이용 했는데...
그런 사유로 내가 내릴 정류장을 무정차한 버스 기사와 잠시 언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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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릴 곳을 지나쳐 신촌.문수 버스 정류장 에서 내려 서해랑길 49코스
시점에 닿기전 신재생 에너지테마파크의 풍력핵심기술연구센타앞을 지납니다.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는 전북 부안군 하서면에 있는 대체에너지를
소개하고 다양한 에너지의 종류와 특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조성된
테마파크로 테마체험단지, 실증연구단지, 산업단지로 나뉘어져 있고
테마체험단지는 36,000㎡의 공간에 4D영상관, 체험관과 홍보관 새만금과
연계된 관광거점들을 소개하고 이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일반 성인 2,000원의 입장료를 받으며 월요일은 휴관한다고 합니다.
실증단지는 107,000㎡의 규모에 4개 국책연구기관이 입주해 기업지원
업무를 처리하며, 산업단지는 211,000㎡의 공간에 실증연구단지와
연계하여 신재생 에너지 산업육성을 담당하고 있다.

10:44 '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내'의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의
서해랑길49코스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서 걷기를 시작합니다.
백련리는 부안군 하서면에 있는 법정리로 곳곳에 소류지가 있고
변산의 의상봉과 와우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문수동 계곡 아래에서
못을 이루고 그 못에서 하얀 연꽃이 피어났기 때문에 백련동이라고
불렀으며, 백련(白蓮)마을은 이로부터 유래한 지명이다.
백련리 서북쪽에 자리한 월포마을은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풍요로운 포구였다. 임진왜란 때 잿더미가 되었던 마을을 다시 일으키면서
반달 모양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월포(月浦)라고 불렀다.
서해랑길49코스 안내판 우측으로 30번도로 위의 '월포교'가 보이고
서해랑길은 30번도로(변산바다로)밑의 '월포길'을 따라 걷게 됩니다.
월포길을 따라 30번도로(변산바다로)의 하부를 지나자 마자
서해랑길은 급 좌측으로 휘어져 세멘트 포장의 농로를 따라갑니다.
세멘트 포장의 농로를 따라가면 우측으로 '노계교'가 보이고
서해랑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노계교'를 건넙니다.
'노계교'를 건넌후에는 좌측으로 휘어져
백련리의 벌판에 자리잡은 '노계마을'을 지납니다.
농로를 따라 노계마을 을 지나는 앞쪽으로는
변산의 의상봉, 와우봉, 옥녀봉 등이 보이네요
농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30번도로(변산바다로)를 바라보며 걷고
앞쪽에 보이는 수로 위의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휘어지게 됩니다.
수로위의 다리를 건너 좌측에 수로를 두고 수로를 따라 걷게 됩니다.
우측으로 보이는 변산쪽의 산 풍경
좌측에 수로를 두고 계속해서 농로를 걷습니다.
좌측으로 나즈막한 산이 보이는 농로를 따라 걷습니다.
좌측의 변산바다로(30번도로)에 '장신교차로' 교통안내판이
보이는 곳에서 서해랑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농로를 따라
장신리(長信里)의 등용마을로 갑니다.
장신리는 부안군 하서면의 서쪽 바닷가에 있는데 긴 갯가
마을이라는 의미로 장신개 또는 장신포라고 불렀다고 하며
조선 전기에 이곳에 잠시 수군의 군영이 있었다고 한다.
우측으로 휘어지면 보이는 장신리의 '등용마을' 과 옥녀봉 풍경
농로를 따라 등용마을에 닿으면 우측으로 '등용2구경로당'이 보이고
서해랑길은 '등용길'을 따라 좌측으로 휘어져 다리를 건넙니다.
다리 건너기전 우측으로 보이는 장신리의 '등용2구경로당'
장신리의 등용마을을 지납니다.
장신리의 자연마을인 ‘등용(登龍)’ 마을은 국도 제30호선과 변산로 사이에
폭넓게 자리 잡은 마을로 용이 여의주를 얻어 하늘로 오르는 비룡상천(飛龍上天)의
풍수혈이 있어 ‘등용(登龍)’이라 불러야 하는데 일제가 쉬운 글자를 채택하여
‘등용(登用)’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등용마을은 규모가 커짐에 따라
1983년 등용1리와 등용2리로 행정리가 분리되었다.
장신리의 등룡마을끝으로 나오면 '금송농업 회사법인'앞의
석불로에 닿고 좌측으로 '장신교차로'가 보이는데
서해랑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석불로(705번도로)'를 따라 걷습니다.
서해랑길은 등용마을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석불로'를 따라서 약50m쯤
진행한후에 좌측으로 휘어져 '변산바다로'를 향해 농로를 걷게 됩니다.
좌측으로 휘어져 농로 끝에 보이는 '변산바다로'의 하부통로 까지 갑니다.
변산바다로(30번도로) 하부통로를 빠져나가 우측으로 휘어져 갑니다.
변산바다로 하부통로를 빠져 나오면 장신리의
'송림길'을 만나고 우측으로 휘어져 갑니다.
장신리의 송림(松林)마을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뜻이며
송림마을 뒤쪽으로는 석불산(石佛山)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듯...
석불산(石佛山/289m)은 전북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장신리,계화면 의복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 석불산 지명은 옛날 중국에서 작은 배에
돌부처(석불)를 실어 바다를 건너와 산 너머 불등리(佛登里)에 올라 이 산에
숨겼다는 것과 옛날 스님 한 분이 서해를 헤엄쳐 건너와 이 산에 올라간 후
오랫동안 산속에서 참선을 하다 돌부처가 되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송림길을 따라가면 처음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휘어지고
우측으로 휘어지면 좌측으로 장신리의 송림마을의
민가 몇채가 보이는 곳을 지납니다.
장신리 마을 끝의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서면
다시 '변산바다로'의 하부 통로를 지나게 됩니다.
30번도로(변산바다로)를 지나면 행정구역은
하서면 장신리에서 하서면 석상리로 바뀌고 마전마을이 보입니다.
앞쪽으로 보이는 석상리 마을은 부안군 하서면의 법정리로서
예전에는 돌마리 또는 돌머리라고 불렀으며 마을 이름 유래는
석상마을 뒷산에 있는 애기 바위의 위쪽에 자리한 지역이라
웃뜸, 윗돌마리 또는 석상(石上)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서해랑길은 앞쪽으로 보이는 석상리의 마전마을로 가지 않고
농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악어산 아래에서 우측으로
휘돌아가는 수로옆의 '지산로'를 따라 갑니다.
좌측의 악어산 아래로 흐르는 '지산로'를 따라 계속해서 갑니다
이곳의 우측으로는 마전마을 경로당이 보이네요
마전마을은 옛날에 삼밭실이라고도 불렀었다고 합니다.
지산길을 따라가면 마전교가 있는 사거리에 닿고
서해랑길은 직진으로 갑니다.
마전교 입구에는 전주최씨 '仁善齊' 입구 표지석이 있습니다.
마전교를 지나면 '지산길'은 끝이나고 이름없는 농로를 따라 갑니다.
수로 사거리에 닿고, 수로를 건너지 않고 우측으로 휘어져 갑니다.
우측으로 휘어지면 길은 좌측에 철망울타리가 쳐져 있는
수로를 따라 풀이 많은 비포장의 흙길을 걷습니다.
수로를 따라 비포장의 농로를 따라 걷다가 우측으로 휘어져
2차선 도로가 지나는 '변산로'에 닿고,
좌측으로 휘어져 '석하'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석하버스 정류장옆의 마을길을 따라 석상리 석하 마을로 들어갑니다.
석상리는 전북 부안군 하서면에 속해 있는 법정리로
돌머리의 위쪽에 자리한 지역이라 웃뜸 또는 석상(石上)이라 하였고
석상리(石上里)의 지리적인 중심지에는 석상마을과 석하마을이 있으며
지금 지나고 있는 석하마을을 돌마리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아랫뜸, 아랫돌마리, 즉 석하(石下)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석하마을에 들어 마을길을 따라 걷다가 좌측으로 휘어져
705번도로(고인돌로) 방향으로 갑니다.
705번도로(고인돌로)를 만나고 우측으로 휘어져 갑니다.
고인돌로(705번도로)를 약50m쯤 진행하다가
우측으로 휘어져 '석상길'을 따라
석하마을 보호수가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석하마을 보호수인 '팽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고
'석하마을' 중간 즈음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구암리 지석묘군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잠시후 지석묘군의 나즈막한 담장을 만나게 되고
담장을 따라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나즈막한 담장 너머로는 구암리 지석묘군이 보이네요
나즈막한 담장을 따라가면 구암리 지석묘군 정문앞에 닿습니다.
부안 하서면 석상리의 구암마을에 있는 지석묘는 바둑판 모양의 남방식
고인돌로 원래 개인 소유의 집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13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10기만 남아있다. 구암리 지석묘는 짧은 받침돌을 괸 남방식으로
자연석을 떼어내어 뚜껑돌로 사용하였으며 그 밑의 받침돌은 보통 4개를
쓰는데 통례를 벗어나 크고 작은 받침돌을 7~8개 까지 사용하고 있다.
지붕돌을 받치는 받침돌의 갯수가 이런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다른 지역
지석묘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로 거북 모양의 거대한 지석묘가
포함되어 있는 등 크기로 보아 남방식 고인돌군의 최대급으로 평가되며
우리나라 고인돌 중 최초로 사적 제103호로 지정되어있다.
구암리 지석묘군을 둘러보고 나와 구암길을 잠시 걸으면
좌측으로 '구암 경로당'을 만나게 되고,
구암경로당을 지나 좌측의 '고인돌로'로 향하게 됩니다.
구암경로당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가면
'고인돌로'를 만나고 우측으로 휘어져 '구암교'를 건넙니다.
서해랑길은 구암교를 건너서 '고인돌로'를 따라 가게 되며.
좌측으로는 '상서초등학교'가 보입니다.
상서초등학교는 전북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로
1922년 3월 22일 부서공립보통학교 설립인가를 받고 개교하였고
1941년 4월 1일 상서국민학교로 교명 개칭하였다.
교훈은 ‘꿈을 크게, 생각은 깊게, 행동은 바르게’이며
교목은 팽나무, 교화는 백일홍이다.
유치원 1학급과 초등 6학급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상서초등학교를 지나 '고인돌로'를 따라 계속가면
'도화'버스 정류장을 만나고 앞쪽으로 삼거리가 보이는 곳에 닿고
서해랑길은 삼거리에서 좌측 '장동' 방향으로 갑니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2차선 도로(봉야로)를 따라
앞쪽으로 보이는 부안군 상서면 장동리로 향합니다.
장동리로 가는 '봉야로'의 좌측 멀리 '석불산'이 보이네요
'봉야로'를 경게로 좌측은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이고
우측은 부안군 상서면 장동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봉야로를 따라가면 상서면 통정리 '분장'버스정류장을 만나고
좌측 파란지붕의 '양곡보관창고'를 지나서는
수로를 따라 우측으로 휘어져 장동리를 걷게 됩니다.
양곡보관창고를 지나면 '봉야로'의 수로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장동리의 축사앞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수로를 따라 걸어야 합니다.
장동리 축사앞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수로에 설치된 파란철망울타리끝까지 진행한후에
좌측으로 휘어져 장동리 농로를 따라 걷습니다.
수로에 설치된 파란철망 울타리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면
작은 수로와 세멘트포장의 농로를 따라 걷습니다.
세멘트 포장의 농로를 따라 가면 장동리의 장서마을을 지나고....
계속해서 마을 앞쪽으로 펼쳐지는 벌판의 농로를 따라 갑니다.
계속해서 농로를 따라 가면 장동리 장서마을을 가로 지르는
'상서북로' 도로 사거리에 닿고
서해랑길은 도로를 건너 직진의 농로를 따라 걷게 됩니다.
장동리의 장서마을은 일제가 두포천 하구에 갑문을 설치하여
바닷물의 유입을 막은후 농경지가 안정되고 마을이 서서히 확장되며
장교리옆 서쪽으로 새로운 마을이 형성이 되기 시작했고
서쪽에 형성된 마을이라 장서리(長西里)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12:50~13:00 장동리 장서마을을 지나는 '상서북로' 도로 사거리
좌측에 '장서'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바람을 막아줄것 같은
버스정류장안에서 점심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가 갑니다.
이곳 장동리(長東里)는 원래 장다리,장교리(長橋里)로 불렀고
마을이름은 옆 두포천(斗浦川)을 오가는 다리 이름에서 유래 했다.
옛날에 마을 사람들이 두포천을 건너기 위해 생소나무를 이용해
기다란 섶다리를 놓았는데, 큰비가 오거나 해일이 닥치면
이 섶다리가 부서져서 마을 사람들은 숙명처럼 다시 만들어야 했고
그와 같은 과정에서 ‘긴 다리가 있는 마을’이라는 장교리라 불렸으며
분장마을은 지형이 마치 노루가 달리는 것 같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상서북로를 건너서 포장도로를 따라 약100m쯤 걷다가
우측으로 휘어져 논 가운데 농로를 따라 걷습니다.
우측으로 휘어지면 곧게 뻗은 농로가 끝이 보이지 않는 곳 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서해랑길은 곧게 뻗은 농로를 따라 약150m정도를 가면
수로를 만나는 곳까지만 간 후에 좌측으로 휘어져 수로를 따라 갑니다.
수로를 건너자 마자 좌측으로 휘어져 수로와 함께 갑니다.
수로를 건너 좌측으로 휘어지면 보이는 풍경
좌측에 수로를 두고, 세멘트포장의 농로를 따라 걷습니다.
좌측에 보이는 건물은 소를 키우는 축사입니다.
직진의 수로를 따라 가면 배수문을 만나고
배수문 뒤의 '주상천' 위의 다리를 건넙니다.
'주상천'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부안군 행안면 대초리에 들어서게 됩니다.
주상천(舟上川)은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서 발원하여 주산면
행안면, 하서면을 지나 계화면 의복리를 흐르는 지방 하천으로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와 주산면 소산리·사산리 경계에 있는 주산(舟山)의
위쪽(上)을 흐르는 하천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이며
옛날에는 두포천(斗浦川), 목포천(木浦川)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넌후에는 직진의 곧게 뻗은
벌판을 가로 지르는 '순환북로'를 따라 걷습니다.
농로인 '순환북로'를 따라 약15분쯤 걸으면 길고 높은 건물의
식품판매 하는 '농부인생' 앞에 닿고 좌측으로 휘어져
자동차 도로의 '순환북로' 로 향합니다.
'순환북로'인 2차선 차도를 건너서 직진의 농로를 따라 갑니다.
농로가 다시 2차선 차도인 '봉야로'에 닿고 우측으로 휘어져 갑니다.
'봉야로' 2차선 도로를 따라 약100m쯤 걸으면 '주영목장'입구에 닿고
좌측으로 휘어져 부안군 행안면 대초리 마을로 들어섭니다.
주영목장 입구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면 행안면 대초리 마을이 보입니다.
대초리(大草里)는 부안군 행안면의 법정리로 원래 대추나무가 많아서
조촌(棗村) 혹은 대추멀이라고 불렀는데, 마을이 크고 발음 표기상
편하게 ‘대추’를 ‘대초’로 고쳐 불렀다고 하며 남서쪽에서 북서쪽으로
주상천이 지나가며 대초리의 전반부는 평야지이고, 북서쪽과
북동쪽으로 자연마을인 솔매, 송서, 애룡 등이 형성되어 있다.
대초리의 좌측 대신경로당과 우측에 대초경로당이
마주보고 있는 곳을 지나고...
대초리 경로당을 지나면 '행안중앙로' 2차선 도로를 건넙니다.
도로를 건너면 행정구역이 행안면 대초리에서 신기리로 바뀌고
'신기신월길'을 따라 신기리의 '신월경로당' 앞을 지납니다.
신기리(新基里)는 마을을 따라 하천이 흐르며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주로 벼농사를 짓고,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 또는
신기(新基)라 불렀다고 하며 자연마을로는 동끄테, 똥매, 먹다리
반송쟁이, 방죽목, 신흥리 등이 있다.
신기신월길을 따라 신기리 마을을 지나고 나면
넓은 2차선의 차도를 만나게 됩니다.
2차선 차도를 건너면 행정구역이 신기리에서 진동리로 바뀌고
진동리의 '진동제네길'을 따라 진동리 마을에 들어 섭니다.
진동리(眞洞里)는 부안군 행안면의 법정리로
하천이 마을을 따라 남북으로 흐르며 소류지가 위치해 있고
참으로 살기 좋은 마을이 되라는 뜻으로 진동(眞洞)이라 불렀으며
북동쪽과 중앙에 시어산(104.3m)이 있고 남동쪽에는
승암산(모개산:84.3m)의 일부가 자리하는데 이 주변 일대에서
밭농사를 짓고 대부분의 평탄지에서는 논농사를 짓는다.
자연마을로 구석뜸, 남산리, 신목리, 아랫뜸, 웃뜸 등이 있다.
진동리 마을의 민가를 만나는 입구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갑니다.
진동리 마을의 뒤쪽으로 이어지는 '진동제내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진동제내길을 따라 야산을 너머서면 좌측으로 '행안초등학교'가 보입니다.
행안초등학교앞에 닿는다.
행안초등학교는 전북 부안군 행안면 진동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로
1941년 3월 25일 행안공립심상소학교로 설립인가 되었고
동년 4월 1일 행안공립국민학교로 개칭, 1941년 4월 10일 개교 하였다.
교훈은 ‘건강한 어린이, 슬기로운 어린이, 예절바른 어린이’ 이며,
교목은 소나무, 교화는 벚꽃이다.
행안초등학교앞의 2차선도로 '월륜길'을 따라
행안초등학교입구 교차로를 지나서
직진의 정읍 교육청 방향으로 갑니다.
행안초교앞 교차로를 지나 직진의 왕복4차선의
'매창로'를 따라 '부안생활문화센터'앞에 까지 갑니다.
14:10 '부안생활문화센터앞'에 도착합니다.
부안생활문화센터앞의 이정표
이곳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면 '매창공원'에 닿게 됩니다.
그리고 부안군청이 1.6km거리에 있네요
'매창공원'의 표지석을 만납니다.
매창공원은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여류문장가로 유명한
부안 명기 '이매창'을 추모하여 조성한 공원이다. 부안군은 이매창의 시를 새긴 시비와
숲을 조성해 문화공원으로 조성하고 매창테마전시관, 습지공원, 부안문화원
유희경 광장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어린이놀이터, 산책로, 농구장 등 운동 시설과
공원 산책길 곳곳에 나무와 꽃들을 식재하고 조형물과 쉼터를 설치하였다.
밤이 되면 공원에는 조명이 켜져 운치 있는 밤 산책도 가능하게 하였고
매창공원에서는 5월에 '부안마실축제'가 개최된다고 한다.
매창공원에 들어서 우측의 계단을 올라서면 판소리 여류명창 이중선의 묘역을 만난다.
이중선은 당시에 추월만정, 사랑가로 가장 명성이 높았던 이화중선의 여동생으로
언니(이화중선)의 도움으로 소리꾼이 되었고, 1920년대 전북 고창군 풍류객의 모임인
'율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음반녹음과 방송활동을 병행 하였다.
자기만의 독특하고 애절한 한이 서린 흥타령과 육자배기 가락을 구성지게 잘하여
한이 어린 민족의 소리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1932년 갓 30세를 넘긴 나이에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이매창의 묘는 이곳에서 조금더 진행한 공원 중앙부에 있는데
서해랑길의 따라가기를 하다보니 이매창의 묘소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매창공원을 지나는 길에 많은 시비들이 세워져 있네요
이 시비는 허균이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쓴 글이라네요
이매창님이 지은 '임생각' 시비
매창공원내에 있는 수변공원 풍경
매창 공원내에 있는 매창테마관은 조선 시대 명기(名技)
이매창(李梅窓)(1573~1610)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기념관이다.
이매창(李梅窓)은 조선 선조(宣祖) 때의 여류 시인으로 이름은 계생(癸生, 桂生)
또는 향금(香今)이라 했으며, 자는 천향(天香)이고 호는 매창(梅窓)으로
황진이(黃眞伊), 허난설헌(許蘭雪軒)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여류 문장가다.
전라북도 부안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한테 글을 배워 시(詩)에 뛰어났으며, 가무에도 소질이 있었고
특히 거문고를 잘 탔다. 황진이(黃眞伊)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의 명기(名妓)였고,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난 유희경(劉希慶), 허균(許筠), 이귀(李貴) 등과 교우가 깊었다.
1610년(광해군 2)에 38세의 나이로 죽어서 매창뜸에 거문고와 함께 묻혔으며
죽은 지 45년 만인 1655년(효종 6) 묘비를 세웠다. 1668년(현종 9)에는
개암사(開巖寺)에서 매창의 시 58편을 모아 『매창집(梅窓集)』을 펴내었다.
매창테마관을 끝으로 '매창공원'을 빠져 나와
좌측에 둥그런 모양의 건물인 '부안문화예술회관'앞쪽으로 향합니다.
14:24 부안문화예술회관 앞을 지납니다.
부안문화예술회관은 부안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2001년 10월 11일
개관하였으며 콘서트·연극·무용 등의 무대공연과 영화상영회, 전시회를 비롯해
워크숍·세미나·강연회, 지역단체의 발표회 등 각종 문화·교육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대지면적은 1만 7,073㎡, 건축총면적은 6,364.28㎡로,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붉은 벽돌건물이며 건물 중앙의 지붕은 돔(dome) 형태로 되어 있다.
'문화예술회관길'을 따라 가면 번영로(705번도로)를 만나고
좌측으로 휘어져 가면 '부안중학교'앞 교차로에 닿습니다.
부안중학교 전경
부안중학교는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공립중학교로
1946년 11월 8일 설립인가를 받아 1946년 12월 19일 개교하였다.
교훈은 ‘정직하고 겸손하며 질서를 지킨다’이며 교목은 호랑가시나무
교화는 장미이다. 특수학급 1학급을 포함하여 3학년 12학급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특색사업으로 도예체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부안중학교앞 교차로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당산로'를 따라가고
당산로를 따라 약70m정도 진행한후 좌측으로 휘어져 갑니다.
언덕을 오르면 '서외6구마을회관앞'을 지나고
서외6구마을회관앞을 지나면 '서문로'에 닿고
서문로를 건너서 '향교2길'을 따라 '서림공원'으로 오릅니다.
향교2길 끝에서 '서림공원'에 닿고
서림공원입구에서 좌측의 산책로를 따라 오릅니다.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가 우측의 편백나무숲속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상소산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편백나무숲의 등로를 지나면 로프가 매어져 있는 가파른 등로를 오르고
상소산 전망대에 도착을 합니다.
전망대에 오르면 부안읍내와 멀리 변산반도쪽까지
조망이 좋을텐데...정자가 낡아서 오르지 못하도록 계단입구를
막아 놓았네요
전망대 아래에서 잠시 '석불산'을 조망 합니다.
석불산을 조망하다가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변산국립공원의 산자락이 운무로 흐릿하게 보이네요
다시 좌측으로 조금 방향을 틀면
부안읍내의 도심 풍경이 보입니다.
부안읍은 동쪽으로 백산면(白山面), 서쪽으로 행안면(幸安面)
남서쪽으로 주산면(舟山面), 북쪽으로 동진면(東津面)에 접한다.
삼한시대 부안현, 백제때 개화현(皆火縣), 고려시대 부령현(扶寧縣)으로
불리다가 1919년 부령면으로 독립하였고 1943년 10월 1일 읍으로
승격하였다. 1960년대 말의 동진강 유역 개발에 의해 경지 및 농업용수의
도수로(導水路) 등이 잘 정비되었다. 채소·유채 재배 등으로 토지
이용률이 높고, 부안군의 행정·교통 중심지를 이루어 전주∼영광 국도
변산반도 해안지역에 연결되는 지방도, 정읍·신태인·줄포에 이르는
지방도 등이 교차한다. 국가유산으로는 부안 서문(西門)안 당산
부안 동문안 당산, 서외리 당간지주(西外里幢竿支柱), 이매창묘
신석정고택, 남문안 당산, 돌모산 당산, 부안향교대성전, 성황사(城隍寺)
부안읍성, 김직손비각(金直孫碑閣), 청일암(請日庵) 등이 있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부안 향교가 내려다 보이네요
부안향교는 조선전기인 1414년(태종 14)에 창건된 교육시설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1607년에 만화루(萬化樓)를 신축하고
1848년에 양사재(養士齋) 신축 등 대대적인 확장을 하였고
1894년에 현감 조연명(趙然明)이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각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명륜당과 만화루, 양사재
동재, 서재 등과 홍살문 ·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대성전은 1984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세멘트포장 임도를 만나고
임도 따라 상소산 정상 방향으로 진행을 합니다.
넓은 임도를 따라 상소산 정상쪽으로 진행하면
유아숲체험원 앞에 닿는다.
유아숲 체험원을 지나면 삼거리에 닿고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상소산 정상에 닿는데
서해랑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부안군청으로 향합니다.
우측으로 휘어져 도로 따라 내려가면 혜원사를 만나게 된다.
혜원사는 부안읍 동중리 성황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1924년에 가야산 해인사 삼선암에 계시던 지승(智勝)스님이
부안읍 서외리에 인법당(人法堂)을 건립하고 주석하면서
청일암(淸日庵)이라 명명하였다. 1954년 지승스님의 상좌인
혜경스님과 양 보현보살님이 성황산 북서쪽 성황사(城隍寺)위에
석조법당과 요사채를 지어 이주하였고, 비로서 가람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1970년9월에 성황산 남쪽 중턱 서림공원내
현위치로 다시 이주하였고 1999년2월9일 사찰 명을 혜원사로 바꾸고
대한불교조계종24교구 선운사의 말사로 등록하였다고 한다.
혜원사를 지나 넓은 도로를 따라 부안군청으로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길에 서림공원내의 '서림정' 정자를 지나고
서림공원을 벗어나면 바로 앞쪽에 부안군청으로 진입하는 계단을 만난다.
15:04 부안군청 안쪽에 들어서면 서해랑길49코스 안내판이 있고
이곳에서 걷기를 종료 합니다.
♣
부안군청에서 서해랑길49코스 걷기를 마치고 부안터미널로 향합니다.
16:10에 부안터미널을 출발하여 센트럴씨티로 향하는 고속버스 표를
예매하였기에 약1시간의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도보로 이동합니다.
부안군청에서 부안터미널까지는 도보로 약15분 정도 소요 된듯 하네요
날씨가 춥지 않아 옷을 한꺼플 벗고 걷기를 했는데도 땀에 젖은 듯
터미널 화장실에서 씻고 터미널내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나니
버스 출발 시간이 되네요....
대중교통을 이용한 나홀로 서해랑길 49코스는 계획했던 대로 잘 마쳤는데...
아침에 부안신재생에너지테마공원으로 가기 위해 탔던 100번 버스기사님의
불친절함에 기분이 상했던 감정들이 해소 되지 않은채 귀가를 하며
내일쯤 부안군청에 농어촌 버스 100번의 노선에서 '백련'정류장을 무정차 하도록
하였는지를 알고 싶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버스노선도에서 '백련'정류장을
삭제하지 않은 공무원의 직무태만인지, 아니면 버스기사님이 '백련'정류장을
무정차 하고 그냥 지나 간 것인지를 확인하여 버스기사님의 근무태만과 불친절한
사항을 개선하고픈 마음에 민원을 제기할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확인한 부안 농어촌100번 버스가 '백련' 정류장 정차한다는 정보
1정류장 지나쳐서 나를 내려놓고 횡하니 떠나는 내가 탔던 버스↓
민원접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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