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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둘레길/남파랑길(진)

남파랑길63코스/역방향(팔영농협망주지소-죽암방조제-벌교대교-벌교역-부용교 동단)

by 山頂 2026. 7. 2.

남파랑길63코스/역방향(팔영농협망주지소-죽암방조제-벌교대교-벌교역-부용교동단)

 

▣ 트래킹 일시 : 2026년06월29일. 월요일  날씨 : 맑음

남파랑길63코스/역방향(팔영농협망주지소-죽암방조제-벌교대교-벌교역-부용교동단)=21.2km

  * 팔영농협망주지소-4.2km-죽암방조제-8.5km-벌교대교-4.6km-벌교역-2.6km-부용교동단

남파랑길63코스/역방향(팔영농협망주지소-죽암방조제-벌교대교-벌교역-부용교동단)<QR위치>

  * 63코스 시점 : 전남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 504-3(부용교 동단)

  * 63코스 종점 : 전남 고흥군 남양면 망주리 480-2(망주학구경로당 건너편)

남파랑길63코스/역방향(팔영농협망주지소-죽암방조제-벌교대교-벌교역-부용교동단)통편

      - 좋은사람들 산악회 전용버스/67,000원

남파랑길63코스/역방향(팔영농협망주지소-죽암방조제-벌교대교-벌교역-부용교동단)기록

     * 두루누비 기록 : 21.19km(06시간37분/06:15~12:52)

     * 오록스맵 기록 : 21.37km(06시간06분/06:45~12:52)

     * 오록스맵 트랙 :남파랑길63코스/역방향(망주학구경로당-부용교동단)

남파랑길63코스(망주학구경로당-부용교동단)산정__20260629_0645.gpx
0.32MB

 

06:15   남파랑길64코스를 고흥군 과역면 신흥리의 독대마을에서 역방향으로 걸어

고흥군 남양면 망주리의 팔영농협하나로마트망주지소앞에서 걷기를 마친후

두루누비 따라가기를 남파랑길63코스로 다시 설정을 한후에 역방향으로 걷기를

시작하여 전남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의 부용교 동단으로 향합니다. 

06:15~06:45  남파랑길64코스 안내판앞을 출발하면 앞쪽으로 망주 버스정류장이 있으며

남파랑길 고흥 63코스 역방향으로 걷기를 시작하기 전에 버스정류장의 의자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며 휴식을 갖습니다.

버스정류장 앞쪽으로는 망주 학구경로당이 보이네요

남파랑길 63코스의 역방향 걷기의 출발지점은 양동마을회관과

버스정류장앞 사이를 지나는 2차선 도로(망월로)를 따라 우측으로 향합니다.

망주리 망동마을의 옛지명은 “골몰” 혹은 “동편”이라고 불렀는데 골몰이라 함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골마을 즉 “골몰”이라 했으며, 동편이라 함은

망주리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편(東便)”이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망주리(望珠里)의 동(東)쪽 마을이라 하여

“망동(望東)”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망동마을회관앞에서 약100m쯤 도로를 따라 진행한 후에

망월로 2차선 도로 좌측의 마을길로 들어서 망동마을을 지납니다.

고흥군 남양면 망주리의 망동마을의 민가가 많은 지역을 벗어나면

세멘트포장의 농로를 따라 망주리의 넓은 벌판을 지나게 됩니다.

벌판을 지나는 농로옆에 묘지가 조성되어 있는 곳을 지납니다.

그런데 조성된 묘지에는 잔듸는 보이지 않고 세멘트로 덮혀 있네요

묘지앞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산아래로 조성되어 있는

농로(망월로)를 따라 걷습니다.

계속해서 산아래쪽으로 이어지는 농로(망월로)를 따라 걷다가

좌측으로 휘어져 망주방축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망월로에서 좌측으로 휘어진 후 예전에 섬이였던 곳의 우측으로 휘어져 갑니다 

07:17      '망주방축'앞에 닿습니다.

망주 방축은 '대강천' 하류에 만들어진 '죽암방조제'를

조성하면서 생겨난 방축입니다.

좌측에 대강천을 두고 천변길을 따라 죽암방조제가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죽암방조제의 배수문이 보이고

남파랑길은 죽암방조제를 건너게 됩니다.

07:32     죽암방조제에 닿고...방조제를 건너 갑니다.

죽암방조제는 고흥군 남양면 월정리와 동강면 죽암리를 연결하는 방조제입니다.

방조제 우측으로는 작은 선착장과 횟집 그리고 민가가 몇채 있고

그 뒤쪽으로는 운무에 덮혀 있는 망주산(▲348.1m)도 보이네요

죽암방조제 끝의 오른쪽으로는 '옹암나루터'가 보입니다.

죽암방조제를 건너가면 행정구역이 고흥군 남양면에서 고흥군 동강면으로 바뀌고

동강면 죽암리의 옹암교차로에 닿게 되며, 남파랑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가는

2차선 도로(죽암안길)를 따라 고흥군 동강면 죽암리 옹암마을로 향합니다.

죽암방조제를 건너 약5분쯤을 걸으면 죽암리 옹암마을에 닿게 됩니다.

옹암마을은 죽암리에 속한 자연마을로서 마을연안으로 접한 포구(浦口) 남쪽에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 마치 홀로 서 있는 형태(形態)라 하여 독암(獨岩)이라고

불리어 오다가 일제강점기 당시 제방을 막아 마을이 형성되었고 마을전경이

항아리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마을 이름을 “옹암”이라 불렀고

1956년 분동 된 이래 변함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옹암경로당' 앞을 지납니다.

죽암리 옹암마을을 지나 계속해서 도로(죽암안길)를 따라가면

죽암리의 죽동복지회관앞에 닿게 됩니다.

죽암리의 '죽동복지회관'앞을 지납니다.

죽동마을은 옛날에는 동내전체가 죽림(竹林)으로 우거졌다 하여

마을 명을 한때는 “모랫등목넘개”라 불렀고 또 시누대가 많아 “신죽”이라고도 하였으며

그 후 일제강점기에 죽동(竹洞)으로 개칭하여 변함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죽동복지회관앞을 지난후 남파랑길은 죽암리의 죽림마을 안쪽으로 이어집니다.

죽림마을은 마을 앞이 강변이므로 모래가 많이 밀려와 옛날 마을 명을 “모리목”이라

 불러 왔으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마을전체가 대나무로 울창하였음으로

“죽림(竹林)”이라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죽암리 죽림마을경로당앞을 지납니다.

죽림경로당앞을 지난후 죽림마을의 언덕길을 올라가고

08:03    죽림마을 끝에서 언덕을 오르면 2차선 도로가 지나는

'범등고개' 삼거리에 닿게 되며 남파랑길은 우직진의 '남하로'를

따라 '갯마을 가든' 방향으로 걷게 됩니다.

'남하로(2차선도로)를 따라 언덕을 내려서면 '남하로'와 '대포로(843번도로)'가

교차하는 삼거리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벌교읍 대포리 마을이 보이는데

남파랑길은 대포로에 닿기전 우측으로 휘어지는 농로로 들어서야 합니다.

남하로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농로에 들어서면 

앞쪽으로 '갯마을 가든'이 보이는데...

남파랑길은 '갯마을 가든'을 향해 갑니다.

'갯마을 가든'을 지나면 앞쪽으로 남해바다가 펼쳐지고

우측편으로는 선착장도 보이네요

남파랑길은 좌측으로 휘어져 대포리로 향하게 됩니다.

우측으로 보이는 대포항 선착장 풍경

바닷가에 만들어진 데크목의 산책로를 따라 좌측의 대포리로 향합니다.

잠시후 대포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 닿습니다.

쉼터와 공중화장실 그리고 운동시설등이 설치되어 있네요

대포리 앞 바다쪽에 설치되어 있는 벌교갯벌도립공원 안내판

보성군 벌교읍 대포리 마을을 지납니다.

대포리는 한때 낙안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큰개가 있다하여 한개 또는 항개

대포라 하였는데 융희2년(1908)에 보성군 남하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정동리와 장동리, 제두리의 각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대포리라 하여

벌교읍에 편입되었다. 대포마을은 1823년경에 경주인(慶州人) 정진홍(鄭鎭洪)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며 마을의 이름은 삼면이 바다로 쌓여있고 연꽃이

마치 호수에 떠있는 모습이라 하여 연호동(蓮湖洞)이라 불리워 오다가 교통과

통신이 불편할 때 여수, 삼천포, 부산을 비롯한 목포, 완도, 군산등지에서 상선을

이용하여 생선을 구입할 뿐 아니라 동부6군은 물론 전북 남원에서도 쪽지게를 지고

상인들이 몰려들어 큰 포구를 형성한다 하여 대포(大浦)라 했다고 합니다.

남파랑길은 대포마을을 지나는 대포길을 따라 

'벌교 꼬막체험장'이 있는 곳을 지납니다.

계속하여 대포길을 따라 가면 대포리의 '제두마을'에 닿고

'제두길'을 따라 '제두마을'을 지나게 됩니다.

대포리의 '제두마을'은 1590년경에 천안전(天安全)씨가 처음으로 터를 잡았으며

그후 경주김(慶州金)씨, 동복오(同福吳)씨 등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하며

마을의 이름은 지형이 돼지형태와 같이 생겼다 하여 제두(猪頭)라 했다고 합니다.

제두마을을 지나는 우측편으로는 태양광발전단지가 넓게 펼쳐져 보이네요

08:39  제두마을회관앞을 지납니다.

제두마을을 지나 마을끝에서 남파랑길은 좌측으로 휘어져

제두길(마을길)을 따라 벌교읍 장암리로 들어섭니다.

'제두길'을 따라가면 2차선 차도(장암길)를 만나게 되고

남파랑길은 장암길(2차선차도)을 건너 직진의 농로를 따라 걷습니다.

장암길을 건너 직진의 농로를 따라가면 높은 비닐하우스를 만나게 되고

남파랑길은 비닐하우스앞을 지나 잠시 걸으면 장암길(마을길)삼거리에 닿고

높은 비닐하우스 뒷편으로 휘어져 가는 마을길을 따라 걷게 됩니다.

높은 비닐하우스를 지나면 만나는 장암길 삼거리

남파랑길은 좌측으로 휘어져 장암길을 따라 잠시 걷습니다.

장암길을 따라 약150m쯤 걸으면 삼거리에 닿고

남파랑길은 좌측으로 휘어져 높은 비닐하우스 뒷편의 농로를 따라

나즈막한 야산의 고개를 넘게 됩니다.

농로를 따라 나즈막한 고갯길을 넘어서면 장암리 마을에 닿고

앞쪽으로는 장일농장과 넓은 태양광 발전단지가 보이네요

남파랑길은 장암리 마을입구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남해 바닷가로 향하게 됩니다.

장암리 입구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논가운데 길을 따라 바닷가로 향합니다.

09:04   보성군 벌교읍 장암리 앞쪽의 바닷가 제방길에 닿습니다.

우측으로는 바닷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나고, 그  뒤쪽으로는 

벌교읍 영등리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벌교읍 장양리까지 연결된

남해고속도로의 벌교대교가 보이네요

남파랑길은 제방길을 따라 보성군 벌교읍 부용교까지 걷게 됩니다.

여자만의 벌교앞 바다의 제방을 따라 벌교대교가 있는 곳을 향해 걷습니다.

벌교대교를 보며 계속해서 제방길을 걷습니다.

벌교갯벌은 습지보호지역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납니다.

남해고속도로의 벌교 대교 아래를 지납니다.

벌교 대교 옆으로는 또 다른 교량을 건설하고 있는데

사람들만이 건널 수 있는 산책로를 만드는듯  합니다.

09:46     신설중인 데크목 교량과 벌교대교 풍경...

시원한 바닷 바람이 불어오는 벌교대교 아래 그늘에서 한참을 쉬었다 갑니다.

벌교대교를 지나서도 계속해서 제방을 따라 벌교읍내로 향합니다.

드넓게 펼쳐지는 갯벌 그리고 건너편으로는 거선봉, 제석산, 개운산,시루봉 등이 구름에 덮혀 있네요

드넓은 갯벌과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습지 지역을 지납니다.

좌측으로는 대하 양식장이 드넓게 조성되어 있는 곳을 지납니다.

벌교읍내가 가까워지면서 갈대밭이 드넓게 펼쳐져 보이네요

갈대밭속으로 연결되는 데크목 산책로

벌교천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쯤에 설치되어 있는 갈대밭속으로 연결되는 산책로

드넓게 펼쳐지는 갈대밭과 벌교천위에 놓인 벌교대교가 보입니다.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갈대밭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갑니다.

보성 벌교 갯벌 해양보호구역 안내판

벌교천의 갈대밭 산책로에서

벌교천의 갈대밭 산책로에서

잠시 그늘에서 쉬었다가 갈대밭 산책로를 따라 2번국도의 벌교대교로 향합니다.

10:40   벌교천변의 갈대밭을 보면서 벌교천위에 놓인 벌교대교 아래를 지납니다.

벌교천위에 놓인 '벌교대교' 밑을 지나면 칠동천변의 제방길을 따라

칠동천을 건너기 위해 교량이 설치되어 있는 곳 까지 걷게 됩니다. 

칠동천 제방위 우측으로는 칠동천변의 갈대밭 산책로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벌교읍의 삼호병원과 벌교고등학교가 보이네요

칠동천변의 제방길을 따라 오르면 칠동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만나고...

남파랑길은 다리를 건너 다시 칠동천을 따라 벌교천과 만나는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칠동천을 건너는 다리

다리를 건너후 다시 칠동천을 따라 벌교천과 만나는 지점으로 향합니다.

칠동천과 벌교천이 합류하는 지점을 지나면서

남파랑길은 좌측으로 휘어지면서 벌교천을 따라 걷습니다.

벌교천과 벌교천위에 놓인 철교가 보이네요

벌교천과 철교

벌교천에 있는 벌교항

벌교항 표지석

벌교항 표지석을 지나 철교 아래를 통과하고

철교를 지나면 '부용교'가 보입니다.

부용교 동단(우측)이 지금 걷고 있는 남파랑길63코스의 시점(종점)에 닿게 되는데...

종점에 닿게 되는 과정은 좌측의 벌교역을 거쳐 태백산맥문학거리를 지나 '홍교'를 건너

다시 벌교천을 따라 부용교 동단에 닿게 됩니다.

벌교천위에 놓인 '부용교' 서단에 닿고...

'홍암로'를 따라 좌측으로 진행하여 '벌교역'으로 향합니다.

11:15   '벌교역' 앞에 닿습니다.

벌교역은 전남 보성군 벌교읍 채동선로 228에 위치하는 경전선의

여객과 화물 취급및 승차권 발매등의 업무를 하는 역으로

구룡역과 조성역 사이에 있다. 1930년12월2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으며, 벌교라는 명칭은 포구에 뗏목을 역어 다리를 놓아

건너 다닌다 해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벌교역앞 사거리에서 남파랑길은 '벌교약국'과 '벌교사랑치과'

사이의 골목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골목길로 들어서 조금 걸으면 일본식 여관인 '보성여관' 앞에 닿게 됩니다.

구 '보성여관'은 국가등록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지어진 일본식 여관으로 1층은 객실로, 2층은 연회장으로 꾸며졌다.

당시 일본식 여관은 오늘날의 카페처럼 숙박과는 별도로 차를 팔았는데 2층 연회장에서

사람들은 차를 즐기며 모임, 파티, 상거래등을 하곤 했다고 합니다. 2층 연회장은

현재 보성여관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공간이기도 하며, 벽없이 문짝으로 방을 나누는

전통적인 일본식 다다미방 4칸으로 이루어져있어 일본 주택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보성여관은 남도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소설에서

 남도여관은 경찰토벌대장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보성여관을 지나면 벌교초등학교를 만나고

곧 이어 소설 태백산맥 문학거리로 들어섭니다.

태백산맥 문학거리는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읍 이곳저곳을 걸으며

소설 태백산맥속의 흔적들을 따라 벌교의 역사를 알아 가는 거리로 태백산맥 집필의

모든 것을 담은 태백산맥 문학관과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소화다리, 옛돌담 그대로

회정리 마을길, 그리고 월곡영화마을 벽화골목등을 볼 수 있습니다.

'벌교금융조합' 건물앞을 지납니다.

붉은 벽돌을 바탕으로 그 사이 사이에 돌을 깍아 넣어 건물의 견고함과

장식적 효과를 동시에 노린 일본인들이 즐겨 지었던 관공서형 건물 그모습이다.

지금도 변함없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지난 역사를 반추하게 해주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금융조합장 송기묵이 일제강점기부터 금융조합에 근무해온

이력을 지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친일파가 척결되지 못한 이 땅의 비극이

수없이 많은 분야에서 그런 식으로 기득권을 행사했음을 작가는 여러 주인공들을

통해 일깨우고 있다. 송기묵은 돈을 다루는 사람답게 치부에도 능해 은밀하게 

고리대금업까지 해가며 탄탄한 재력을 확보해 딸의 서울의 이화여대에까지

유학시키지만 결국 좌악들에게 죽고 만다.

이 건물은 1918년 벌교금융조합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926년 농촌지도소 벌교지소

벌교지역 농민상담소 등으로 활용되었고, 2005년12월9일 등록문화재 제226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벌교금융조합의 역사와 한국 화폐사에 대한 전시로 활용하고 있다.

태백산맥 문학거리에 있는 조형물

태백산맥 문학거리를 지나며...

벌교읍 벌교리 '계두마을회관' 앞을 지납니다.

계두마을은 한일합방이전에는 바다로서 소형 꼬막배가 드나드는 지역이었으나

1930년경에 바다를 매립하고 김해김(金海金)씨 등 많은 성씨들이 장차 교통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모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의 이름은

존제산(尊帝山)의 주봉이 동남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려 마을뒤에서 머무른 형국이

마치 닭머리와 비슷하여 닭머리로 불리어 오다가 현재는 닭머리의

한자음을 빌어 계두(鷄頭)라 했다고 한다.

계두마을회관을 지나면 소설 태백산맥 문학공원에 닿고

소설 태백산맥을 집필한 조정래님의 초상 조형물을 만나게 됩니다.

조정래는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나 광주 서중학교, 서울 보성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왜곡된 민족사에서

개인이 처한 한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작품활동을 펼쳐왔다.

대하소설 3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비롯해 주요작품으로 단편집 '어떤전설'

'20년을 비가내리는 땅', '황토', '한',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가 있다. 그 외에 산문집으로 '누구나 홀로선 나무', 황홀한 글감옥'을 펴냈고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을

발표했다. 조정래님은 작가 정신의 승리라 불릴 만큼 자신의 일생을 문학에 온전히 

바쳐왔으며 한국문학 뿐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작품활동을

하여 왔으며,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만해대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조정래 작가를 형상화한 이 조형물은 이용덕

서울대 조소과 교수가 작업한 이 조형물은 역상조각 기법을 활용해 가로 23미터, 높이 3미터로

제작한 원호 형태의 작품이다. 조형물 왼편에는 역상조각 기법으로 소설 탈고 뒤

작가 조정래의 모습을 스테인리스 스틸 주조로 만들어 작가의 고뇌와 생동감을

느끼도록 했으며 오른편에는 알루미늄 소재를 이용해 소설 <태백산맥>의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태백산맥에 대하여'와 태백산맥의 내용을 4부로 나누어 조형물을 만들었네요

소설 '태백산맥'에 대하여

소설 태백산맥 줄거리 요약

1부) 한의 모닥불

소설 태백산맥 줄거리 요약

2부) 민중의 불꽃

소설 태백산맥 줄거리 요약

3부) 분단과 전쟁

소설 태백산맥 줄거리 요약

4부) 전쟁과 분단

벌교의 대표 음식 '꼬막' 정식을 먹기 위해 고려회관에 들렸습니다.

1인분에 22,000원을 받는 고려회관의 꼬막정식 상차림 

벌교읍 행정복지 센타

벌교읍은 전라남도 보성군의 동부에 있는 읍으로 동쪽에는 제석산, 북쪽에는 백이산

서쪽에는 존제산(712m), 남쪽에는 장군봉(414m), 병풍산(479m) · 비조암(456m)이 솟아 있다.

읍의 동부지역에 있는 벌교리 · 장양리 · 장암리 등이 남해와 접하고 있으며, 벌교천

그 지류가 흐르는 지동리 · 전동리 일대에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읍 소재지인 벌교리를

비롯하여 21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백제 시대 분차군(分嵯郡) · 분사군(分沙郡) · 부사군(浮槎郡)

신라 시대 분령군(分嶺郡), 고려 시대 낙안군(樂安郡) · 양악(陽岳)에 속하였다.

낙안군의 옛 고을이 있었으므로 고읍면(古邑面)이라 하여 22개 동리를 관할하다가

1908년(융희 2)에 보성군에 편입되어 고상(古上), 고하(高下)의 2면으로 분리되었다.

1914년 흥양군(興陽郡) 일부와 순천군(順天郡)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포구로서 번창한

벌교리의 이름을 따서 벌교면이라 하였다. 1929년 순천군 일부를 편입하였으며

1937년 벌교읍으로 승격하고, 1983년 고흥군 일부를 편입하였다.
『해동지도』(낙안)의 벌교 일대에 벌교 다리가 묘사되어 있고 『1872년지방지도』에는

벌교(筏橋)를 비롯하여 고읍(古邑) · 대포(大浦) 등이 그려져 있는데, 벌교(筏橋) 앞에는

다리가 그려져 있고 '단교(斷橋)'라 기록되어 있다. 『호구총수』에는

고읍면 벌교리(筏橋里)가 나타나며, 나무다리가 있어서 벌교라 불렀다고 한다.

홍교 마을에는 1734년에 놓은 길이 27m, 높이 3m의 홍교(무지개 돌다리)가 있는데

홍교가 있던 자리는 원래 나무다리가 있었다 한다. 원래 있던 나무다리는

1718년에 주민이 놓았는데, 1728년 홍수에 유실되었고

1729년 선암사 주지가 돌로 다시 만들어 1734년에 완공했다고 합니다.

벌교읍 행정복지센터옆의 태백산맥길을 따라 잠시 걸으며 '홍교'앞에 닿게 됩니다.

12:33     벌교천 위에 놓인 '홍교' 모습

벌교 '홍교'는 벌교읍에 있는 조선시대의 화강석 석교로 길이 약 27m, 높이 3m의

홍예를 3칸 연결하여 축조하였다. 이 홍교는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있는

선암사 승선교와 함께 그 구조 형식이 가장 뚜렷하다. 홍교는 다리 밑이 무지개처럼

반원형으로 쌓은 다리를 말하는데, 홍예교, 아치교, 무지개다리라고도 한다.

벌교라는 지명은 예전에 이곳에 있었던 뗏목다리에서 유래하였다.

이 홍교는 원래 숙종 44년(1718)에 당시 낙안현의 주민들에 의해 뗏목다리를 놓았는데

영조 4년(1728)에 전남도 지방에 내린 대홍수로 이 다리가 유실되자 그 이듬해

선암사 주지 호암화상이 제자인 초안선사를 화주로, 습성대사를 공사 감독으로 천거

착공하였으며, 이 공사는 6년 후인 영조 10년(1734)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1981∼1984년까지 4년에 걸친 보수공사를 통해 호예의 밑부분과 석교 외벽의 시멘트를

제거하고 화강암으로 교체하여 원형을 되찾았다. 원래 다리의 규모는 폭 4m, 길이 80m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홍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며

 현재도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이 다리를 위해 주민들이 60년마다 회갑잔치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남파랑길은 벌교천위에 놓인 '홍교' 를 건넙니다.

'홍교'를 건넌후 '조정래길'에서 우측으로 바라본 '홍교' 모습

남파랑길은 '홍교'를 건넌후 '조정래길'을 따라 부용교 동단으로 향합니다.

'조정래길'을 따라 걸으면 잠시후에 벌교천위에 놓인 '부용교'를 만나고

'부용교'를 지나면서는 벌교천변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게 됩니다.

남파랑길은 벌교천변으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습니다.

미리내 다리가 보이는 벌교천변의 산책로를 지납니다.

'미리내' 다리

벌교천변으로 만들어진 산책로에는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글귀를 적어 놓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네요

12:53     부용교 동단의 교차로앞에 설치되어 있는

남파랑길 보성63코스 안내판앞에 닿고

남파랑길 고흥65코스 안내판앞에서 역방향으로 걸었던

남파랑길 64코스와 63코스 걷기를 종료 합니다.

전남 고흥군 과역면 연등리 독대마을회관앞에서 남파랑길64코스를 역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여 고흥군 팔영면 망주리에서 남파랑길64코스 걷기를 마친후

이어서 남파랑길63코스도 역방향으로 걸어 부용교 동단 교차로앞에서 걷기를

마쳤는데...서울로 귀경할 버스가 아직도 도착해 있지 않네요

장거리를 오랜 시간 걷느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고,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머리위로 쏟아지고 있는 시간이라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차에서 휴식을 갖을 수 없어

부용교 동단 나무그늘 아래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려 봅니다.

서울로 귀경시간이 13:50분이니....얼마 안기다리면 버스가 도착 할테지요...

다행히 회원들이 모두 일찍 걷기를 마치게 되어 서울 귀경 시간도 20분 단축 되었네요.

오늘도 걷기를 마칠 무렵에는 더위 때문인지 현기증까지 느껴 졌었습니다.

비가와도 혹독한 더위가 지속되어도 계속해서 걷기를 이어가야 하는 올 여름에도

몸에 적신호가 켜지지 않고 무탈하게 잘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