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서원(紫雲書院) 답사
DMZ평화의길 10코스의 종점인 장남교 북단에서 역방향으로 걷기를 시작하여
황포돛배 와 자장리 마을을 거쳐 파평면 장파리의 리비교에서 10코스를 마치고
이어서 DMZ평화의길 9코스도 역방향으로 진행하여 파평면 행정복지센타가
있는 곳을 거쳐 율곡습지공원에서 트레킹을 마쳤는데도 오후3시가 되지 않았고
이른 귀경길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자운서원'을 답사하게 되었다.
♣ 자운서원 답사 일시 : 2026.02.07.토
♣ 자운서원 위치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자운서원로 204 / 전화 031-958-1749
♣ 자운서원 대중교통 : 버스 19-1 (갈곡리종점-방미)
* 배차간격 35분~45분, 첫차 06:50/ 막차 21:20
자운서원(紫雲書院) 소개
1615년(광해군7)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이(李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50년(효종1)에 '자운(紫雲)'이라고 사액되었으며
그 뒤 김장생(金長生)과 박세채(朴世采)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위패는 매안(埋安)하고 서원터에 설단(設壇)하여 향사를 지내왔고
그 뒤 1969년에 지방유림의 기금과 국비보조로 복원하고 1975년과 1976년에 걸쳐
보수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팔작지붕으로 된 6칸의 사우(祠宇), 신문(神門)
동서 협문(夾門) 등이 있으며. 담장 밖에는 묘정비(廟庭碑)가 세워져 있다.
서원의 좌측 능선에는 이이와 양친의 묘소가 있고 근처에 경기도 교육위원회에서
설립한 율곡교육원이 있다. 사우에는 이이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김장생과
박세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서원은 1973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묘정비는 1978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매년 8월 중정(中丁 : 두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5변(籩) 5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2,000여 평과 약간의 대지가 있다고 합니다.
♥
자운서원의 넓은 주차장 앞에 닿으면 율곡선생유적지 입구가 보입니다.

율곡 이이 유적지의 건물 과 가족묘지 배치도 와 안내문

이이 유적 관람 안내판

율곡 선생 유적지로 들어가는 문앞에서

유적지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에 이이와 우측의 신사임당 동상을 만납니다.

이이와 신사임당 동상을 지나면 율곡 기념관을 만나게 됩니다.

율곡 기념관안으로 들어서면
율곡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영상물도 있습니다.

나도 밤나무 이야기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었네요
인쇄가 되도록 하였는데...오늘은 작동이 안되어
캡처한 사진이라 선명치가 않습니다.

재실(齋室)은 제사 지내기에 앞서 목욕재계하는 집으로
보통 묘소 아래에 지어놓으며 이곳에서는 제사 전에 족속들이 모여
재계(齋戒)하면서 제사를 준비하고, 때에 따라서는 제사를 지내기도 하며
살림집을 부설하여 묘소를 수호・관리하기도 하였다네요.

신사임당 사당

신사임당 사당안에 있는 초상
신사임당은 이이의 어머니로서 1504년(연산군 10)에 태어나
1551년(명종 6)에 사망했으며 시·그림·글씨에 능한 예술가였다.
그의 어머니는 친정의 아들잡이로서 친정에 살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녀교육을 할 수 있었고, 신사임당도 남편의 외조 속에 천부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 고상한 정신
기백을 드러내는 글씨는 모두가 탐낼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개척하였고
조선전기 「자리도」·「초충도」·「노안도」 등의 작품을 그렸다.

신사임당 사당앞에 있는 안내글

율곡이이의 가족묘가 자리하고 있는 입구의 여견문(如見門)

율곡이이의 가족묘 배치도

율곡의 가족묘 배치가 특이 합니다.
맨위가 이이 율곡과 부인 곡산 노씨묘 이고
그아래가 형님 부부 묘
세번째가(맨앞) 이이 율곡의 부모(이원수,신사임당)의 묘입니다.
이와 같이 묘를 쓰게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자식이 현달하거나
입신양명했을 경우 부모보다 높은 자리에 묘를 쓰는 당시
풍습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인 율곡 이이의 묘(앞쪽)와 부인 곡산 노씨(뒤쪽)묘
율곡 이이는 외가인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으며 6세때 본가인 파주 파평면 율곡리로
옮겨 왔다. 8세때 화석정에 올라 시를 지을 정도로 학문적 재능을 드러냈으며
13세에 진사과 초시를 시작으로 과거 시험에 아홉 차례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리었다. 이이는 조선의 현실을 누구보다 앞서 지적하고 나라의 개혁을 요구하는 상소를
끊임없이 왕에게 올렸다. 당시 농민들의 어려움을 생각하여 공납을 지역 특산물 대신에
쌀로내고 보유한 토지만큼 쌀을 내는 수미법을 주장하였다. 또 미리 군병을 양성해 대비
하지 않으면 땅이 무너지는 화가 있을 것이라는 10만 양병설을 펼쳤고, 성리학의 핵심을
간추린 성학집요, 아동 교육서인 격몽요결 등의 책을 편찬하였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로
존경받아 문묘에 동국 18현의 한 사람으로 배향되었다.

자운서원 풍경
조선 광해군7년(1615)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에 의해 창건된 서원으로
효종 원년(1650)에 '자운(紫雲)' 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 뒤 숙종 39년(1713)에 이이의 제자인 사계 김장생과 현석 박세채를
추가로 모셔 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하였다. 고종 5년(1868)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70년 문성사(사당)와 내삼문을 복원하였고
1997년 강당과 동. 서재를 복원하였다. 2012년 11월 자운서원 위치 고증을
위하여 실시한 표본 시굴조사에서 문성사 축대 전면에서 창건 당시로
추정되는 건축물의 지대석과 명문기와가 출토되었는데, 연호로 보아
숙종7년에서 14년(1681~1688)사이에 제작된 것이며, 또한 같은 시기에
자운서원내 느티나무 2그루와 수령을 의뢰한 결과 각각 426년과
447년으로 조사 되었다고 합니다.

자운서원의 건물 배치도

강인당(講仁堂)
강인당은 자운서원의 교육 공간으로 유생들이 '인(仁)을 배우는 곳'
이라는 의미로 이름 붙였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헐렸다가 1997년 현재의 건물로 새로 지었으며,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이다. 강인당 앞 동ㅇ서쪽에는 유생의
기숙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동재와 서재가 마주 보며 자리하고 있다.
동재에는 입지재(立志齎), 서재에는 수양재(修養齎)라고 이름을 걸었는데
'입지재'는 학문에 뜻을 두는 곳, '수양재'는 학문을 닦는 곳 이라는 의미이다.

강인당 우측에 있는 거목의 보호수

강인당 우측의 거목 보호수
나무 좌측이 동재(입지재), 우측이 서재(수양재)이다.

자운서원 강인당옆 보호수

자운서원 묘정비는 자운서원의 역사를 새긴 비석으로
자운서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내삼문 앞에
조선 숙종9년(1683)에 세웠다. 묘정비에는 조선 효종 1년(1650)
임금이 자운(紫雲)이라는 현판을 하사한 내력과 율곡 이이의
높은 덕행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글은 지은 송시열과 전액을
쓴 김수항, 비문 글씨를 쓴 김수증은 모두 이이의 학문을 계승한
문인이다. 묘정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의 몸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얹어 모습이 단정하다.

자운서원 묘정비 한글

문성사(文成祠)
문성사는 자운서원의 사당으로 건물 안에는 율곡 이이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다. 조선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린 뒤 1968년 원래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문성사에는 이이의 학문을 이은 수제자 김장생과 후학인 박세채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문성'은 조선 인조 2년(1624) 임금이 율곡
이이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높이 받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문성사에 있는 율곡 이이의 초상

자운서원의 좌측 쪽문을 빠져 나오면 만나는 '율곡 약수터'
수질 검사도 양호로 되어 있으며...약수 물 맛도 좋았습니다.

자운서원을 둘러 보고 나오는 길목에서 만나는 율곡 이이 신도비
조선중기의 대학자이며 경제가인 율곡이이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로
선생의 아명은 현룡(見龍)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석담.
우재, 본관은 덕수(德水) 시호는 문성(文成)이며 자운서원 외 전국
20여개 서원과 사우에 배향되었다. 이 신도비는 선생이 돌아가신지
47년이 지난 인조9년 4월에 건립된 것으로 이항복이 글을 짓고
신익성이 글시를 썼으며 전액은 김상용이 썼다. 비의 재질은 대리석으로
앞 뒷면에 걸쳐 각자되어 있는데 규모는 높이 223cm, 너비 109cm
두께 39cm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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