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평화의길27코스(DMZ자생식물원~돌산령-월운저수지)
DMZ평화의길27코스(DMZ자생식물원~돌산령-월운저수지)
♣ 트래킹 일시 : 2025년03월01일.(토). 날씨 :맑음
♣ DMZ 평화의길 27코스(DMZ자생식물원~돌산령~월운지)거리=17.76km
DMZ자생식물원-5.0km-대암샘터-1.7km-돌산령-6km-453번도로-4.8km월운지
♣ 트래킹 참여 : 거인산악회/회비40,000원
♣ 트래킹 교통 : DMZ 평화의길 전용버스(사당역6번 출구앞 06:50 출발)
♣ 트래킹 시점&종점과 QR 위치
- 시점(DMZ자생식물원) :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로 916-148
- 종점(피의능선전투전적비) :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 산46-2
♣ DMZ 평화의길 27코스(DMZ자생식물원~돌산령~월운지)지도
♣ DMZ 평화의길 27코스(DMZ자생식물원~돌산령~월운지)트래킹 기록
▶ 두루누비 기록 : 17.76km / 05시간08분(11:27~16:35)
▶ 오록스맵 기록 : 17.49km / 05시간08분(11:27~16:35)
▶ DMZ 평화의길 27코스(DMZ자생식물원~돌산령~월운지)GPX트랙
♣
DMZ평화의길27코스(DMZ자생식물원~돌산령-월운저수지)트레킹 메모
오늘 걸었던 DMZ평화의 길 27코스는 거리가 약17.5km로
양구군의 해안면 오유리에서 구불거리며 오르는 '돌산령로'를 따라
고도를 해발 1,050m까지 올려 '돌산령'에 오른후에 양구군 '동면' 비아리로
접어들어 팔랑리를 지나 월운리에 있는 피의능선전투전적비가 있는 곳까지
걸었는데 6.25전쟁을 치루기 위해 만들어진 '돌산령로'는 사연도 많다.
전쟁통에는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 넘었고
6·25 이후엔 수백 명의 주민들이 이주해왔고...이제는 애환이 깃든 길에
자전거를 타거나 도보로 넘나드는 여행객들이 주무대로 변화고 있는 곳이 되었다.
휴전선과 맞닿아 있는 돌산령 주변으로 군부대가 준두하고 산능선에는
군사시설이 있는 고지가 있어 출입이 제한되고 사진촬영도 마음대로 못하는 곳
그래서 맘편히 찾아 올수 없고, 찾아 오더라도 활동에 제한을 받는 곳
돌산령을 넘으며 대한민국 국토를 사수하려고 전선에서 산화한 선배 전우들을
기억해 보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
3.1절과 대체휴일이 겹쳐진 3일간의 연휴의 여파인지
고속도로에 많은 차량이 몰린탓에 양구 DMZ자생식물원 탐방자센타에
도착하는데 4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걷기에 앞서 오늘 참석한 회원들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주차장 건너편 산비탈에 만들어진 DMZ 자생식물원앞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DMZ평화의길27코스 걷기를 시작합니다.
DMZ은 한반도의 동서를 잇는 국토생태네트워크의 핵심벨트로
분단 이후 50여년간 민간인의 접근이 통제.제한되어 왔기 때문에
그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 볼수 없는 독특한 자연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어
자연경관이 우수하고 생물다양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주요 희귀 야생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인정을 받고 있고 경제적, 학술적 가치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이런한 DMZ의 다양한 식물자원 중 특히, 북방계 지역의
식물자원을 수집.보전하고, 통일 후 북한지역의 산림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연구, 그리고 동서 생태축을 연결하는 DMZ지역의 희귀 특산식물을
보전하고자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에 자생식물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11:27 'DMZ자생식물원 홍보판' 우측에 있는 DMZ평화의길28코스 이정목앞에서
DMZ평화의길27코스를 역방향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펀치볼로를 따라 잠시 내려가면 멀리 앞쪽으로
가칠봉 능선이 보이고 잠시후 453번 도로와 만나게 된다.
우측으로 해안면의 '해안분지'가 뚜렷하게 보이는 곳이다.
1차선 포장도로인 펀치볼로가 왕복2차선의 453번도로(펀치볼로)를 만나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인도를 따라453번도로와 나란히 가게 됩니다.
자생식물원입구의 453번 도로에 있는 이정목에서
453번 도로 우측의 인도를 따라 돌산령터널 방향으로 오릅니다.
돌산령터널 500m앞을 지나며
돌산령 터널 직전에 탱크 방호벽이 있는 곳을 지납니다.
11:47 453번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453번도로(펀치볼로)를 따라 직진으로 가면 잠시후 '돌산령 터널'에 닿는데
DMZ평화의 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돌산령로'를 따라 걷습니다.
453번 도로에서 우측으로 갈라진 '돌산령로'에 진입하면
동절기에 차량통행을 하지 못하도록 바리게이트로 막아 놓았지만
그러나 사람의 통행은 가능합니다.
삼거리에서 돌산령 정상까지 5.1km를 구불구불
산모퉁이를 휘돌아가며 오르게 됩니다.
돌산령로 초입은 양지쪽이라 눈이 녹아 있네요
완만하게 오르는 길이라 편안하게 오릅니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그늘진 곳에 잔설이 남아 있고
눈이 녹았다 얼어 빙판이 된 곳도 만나게 되네요
응달쪽에는 눈이 녹지 않아 미끌거리는 빙판길을 오릅니다.
오르막길 우측으로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납니다.
동절기라 폐쇄를 하였는지...철문이 굳게 닫혀 있네요
전쟁통에 만들어진 도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국군과 북한군이 교대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던 한 많은 도로를
이제는 여행객들이 오르내립니다.
길게 이어지는 능선의 고지를 차지 하고자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참혹한 전쟁터였던 이곳을
그 들의 희생 덕분에 여유롭게 걷기를 하고 있네요
12:17 완만한 오르막 길에 여행객들을 위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는 곳에 닿습니다.
산이 가로 막고 있어 조망은 없지만...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는 안성맞춤
윤명숙님이 싸온 맛있는 부침개에 매실주를 겯들입니다.
잠시 언덕길을 올라오느라 흘린 땀과 피로감이 한잔 술에
눈 녹듯이 말끔히 사라지는듯...
음식을 만들고 힘들게 이곳까지 메고 온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몸에 활력을 불어 넣는 휴식후에 걷는 발걸음은
눈길이지만 편안하고 여유 있게 걸어지는듯 하네요
고지를 점령하고자 피로 얼룩졌던 산길이
조국을 수호하였던 영웅들의 산화로 지금은
우리가 여유롭게 걷기를 하고 있네요
고도를 꽤나 올렸네요. 해발 약850m쯤 지점..
눈이 녹지 않은 길을 지납니다.
고도가 높아지니 양지쪽인데도 눈은 녹지 않고 있네요
눈이 녹지 않은 돌산령로를 따라 고도를 높이며 돌산령으로 향합니다.
돌산령로를 따라 구불거리며 눈쌓인 도로의 산모퉁이를 돌아 오릅니다.
12:53~13:20 대암샘터가 있는 쉼터에 닿고
점심과 휴식을 취합니다.
대암샘터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샘터입니다.
낮에는 이곳을 지나는 여행객들이
밤에는 이곳에 터잡고 사는 산짐승들까지
유용하게 이용 하고 있겠죠
돌산령로를 따라 올라오면서 먹은 빈 물병에
대암샘물을 빈병에 가득 채워 갑니다.
대암샘터에서
대암샘터를 지나면 고도가 해발고도가 900m를 넘게 됩니다.
왠만한 산의 높이만큼 오르니 주변으로 조망이 좋네요
도솔산에서 분기한 ▲1,304m봉 풍경
도솔산(▲1,148m)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돌산령 가까이 오르니
군부대에서 제설작업을 했는지....
눈이 별로 없는 도로를 걷습니다.
돌산령에 닿기전에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쉼터를 하나 만나네요
쉼터 좌측편으로는
한국전쟁 당시 도솔산전투등 격전이 벌어졌을때 아마도 이부근쯤 어디에서
미군 종군기자가 돌산령에서 내려다본 해안면 지역의 모습이 마치 미국의
화채그릇과 모습이 비슷하게 보여 Punch Bowl(펀치볼)이라 부르면서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 해안분지가 보입니다
해안면은 원래 특수 행정구역인 소(所)가 있던 곳으로 해방직후 북한땅이
되었고 전쟁이 휴전되면서 인제군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양구군이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원래 해안은 바다 해(海)자를 써 해안(海安)이라고 하였는데
이곳에 뱀이 무척 많아서 주민의 왕래에 큰 지장을 주었다.
그때 한 스님이 돼지(亥)가 뱀과 상극이니 지명도 해안(亥安)으로 고치고
돼지를 많이 기를 것을 권했으며 주민들이 이를 따르자 뱀이 사라졌다고 하며
해안분지를 감싸고 있는 험준한 산줄기는 대암산(1,304m)
도솔산(1,147m), 대우산(1,178m), 가칠봉(1,242m)emd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타원형으로 분수령을 형성하여 분지 내외의 경계선을 이루고 있다.
눈 쌓인 도솔산(兜率山▲1,148m) 정상부 풍경
도솔산(兜率山▲1,148m)은 강원 양구군 동면(東面) 팔랑리(八郞里)와
해안면(亥安面) 만대리(萬垈里)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서쪽의 대우산, 동쪽의 수리봉, 남동쪽의 대암산, 북쪽의 가칠봉 등과 함께
태백산맥(太白山脈)에 솟아 있는 고봉이다. 산의 북동쪽에는 소양강 상류에서
파로호(破虜湖)로 흘러드는 북한강 상류의 서천(西川), 북서쪽에서는
북한강 지류인 수입천(水入川)이 각각 발원한다. 산의 동쪽 기슭에는 소양강이
남북으로 흐르며, 군사분계선이 통과한다.
정상부의 북쪽에는 양구군 동면과 해안면을 연결하는 돌산령이 있다.
도솔산이 6·25 당시 최대 격전지였다는 것. 해병대가 ‘무적해병’이란
칭호를 얻은 것도 이곳의 전투 때문이라고 한다.
도솔산(▲1,148m)은 도솔지맥이란 이름을 낳게한 주산으로
가장 험준한 천연적 요새지이다. 남동쪽으로 고층 습지로 유명한 대암산
용늪과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대우산, 가칠봉 등으로 연결된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양양 · 철원을 삼각의 저변으로 하고 원산을 정점으로 하는
중동부의 삼각산악지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산이어서 군사적 가치가 매우
컸으며 이 때문에 도솔산을 둘러싸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13:40 전망쉼터를 지나서 약200m쯤 오르면 '돌산령'정상에 닿게 되는데
이정표와 1,050m표지판이 서 있으나
군부대지역이니 속히 지나가라고...
군부대나 군시설물을 향해 사진촬영하지 말아햐 한다고....
군부대의 경고방송을 듣게 되니 긴장이 되네요
돌산령정상에서 약간 내리막의 도로를 따라가면
도솔산전적지로 올라가는 도로 입구에 닿게 됩니다.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바리게이트로 막아 놓았네요
아예 오르지 말라고 하는듯...
도솔산전적비가 있는 곳은 양구10년 장생길로
조성되어 있는데도 군통제로 마음대로 갈수가 없습니다.
바리게이트로 입구를 막아 놓은 도솔산전적지입구 표지석만 찍고 지납니다.
도솔산 전적지를 다시 한번 찾아 보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예전에 도솔지맥 산행때 찍었던 사진을 꺼내 봅니다.
도솔산 지구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1951년5월 춘계공세를 격퇴한 직후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양구군 해안면의 해안분지 남서쪽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
도솔산을 확보하기 위하여 제1단계(51.6.4~6.12)작전으로 공격목표 1에서 목표 16까지
점령한 후 켄사스까지 진출하고 제2단계(51.6.13~6.20)작전으로 공격목표 17에서
목표24까지 점령하고 버지선까지 진출하여 도솔산과 대우산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산악지역에 배치된 북괴군 제5군단제12사단과 제32사단의 정예부대를
치열한 공방전과 무수한 희생 끝에 격퇴하고 도솔산을 탈환함으로서 무적 해병의
신화를 만든 전투입니다. 이작전은 1951년6월4일 도솔산 탈환에 실패한 미해병대
제5연대와 임무교대한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공격을 개시하여 적은 완강한
저항을 받아 주간공격을 야간공격으로 전환하는 등 결사적인 돌격작전을 감행하여
난공불락의 진지를 6월20일 24개 목표를 점령하는 개가를 올림으로서
교착 상태에 빠진 우군전선의 활로를 개척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도솔산지구전투 위령비가 있는 곳에 조성된 공원풍경
돌산령을 넘어서면 '돌산령로'는 내리막으로 변하고
양구군 동면의 비아리를 지나게 됩니다.
비아리(比雅里)는 마을 대부분의 지대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높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이며, 자연 마을로는 비둑고개
진고개, 배나무실 마을 등이 있다.
마을은 보이지 않고 지뢰매설로 출입을 막아 놓은
철망울타리를 우측에 두고 하염없이 도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돌산령을 지나 내리막 도로변에 첫번째 쉼터가 조성되어 있는 곳을 지납니다.
도로 옆으로는 밀어낸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어
차량이 뜸한 도로위로 걸어 내려갑니다.
내리막 도로 앞쪽으로 '흔들바위' 처럼 생긴 바위를 보며 지나고
바위틈에 집을 짓고 살았던 말벌집도 보며 내려갑니다.
돌산령에서 양구군 동면으로 향하면서 두번째 쉼터를 만납니다.
무더운 여름이면 잠시 쉬어가도 좋을 쉼터
아직은 기온도 차겁고 찬바람이 불고 있어 그냥 눈요기만 합니다.
14:42 두번째 쉼터를 지나면 좌측으로 대암산 용늪에 갈 수 있는 삼거리에 닿는데
용늪 입구라 화장실과 쉼터가 조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화장실은 잠겨 있네요...평화의 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갑니다.
대암산 용늪입구 풍경
대암산 용늪 생태탐방로 안내도
예전(2017년)에 방문했던 대암산 용늪 풍경
대암산 용늪은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과 강원도 양구군 동면·해안면에
걸쳐 있는 대암산 정상 부근의 습지로 하늘로 올라가는 용이 쉬었다
가는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고위평탄면에 발달한
타원형의 습지로, 고지대의 낮은 기온으로 수분 증발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물이 고이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작은 용늪과 큰용늪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작은 용늪은 습지식물이 거의 사라지고 육지화되었다.
대암산 용늪은 197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9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람사르협약 습지로 등재되었다.
대암산 용늪 입구 삼거리에서 내리막의 돌산령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오늘 걷는 거리가 조금 길어 차량을 이용할 회원을 위해 차량이 대기 하고 있는 곳을 지나고
14:57 구불구불 도솔산의 돌산령을 올랐던 '돌산령로'가
돌산령 터널을 지나온 453번도로(펀치볼로)를 만나고...
좌측으로 휘어져 펀치볼로(453번도로)를 따라 갑니다.
펀치볼로와 돌산령로가 만나는 곳에 있는 이정표
동면 팔랑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453번도로(펀치볼로)의 좌측 인도를 따라 내려갑니다.
453번도로 좌측으로 이어지던 산책로(인도)가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 부터는 우측으로
산책로(인도)가 바뀌게 됩니다.
15:20 453번도로(펀치볼로)를 벗어나 우측의 비포장 길로 접어 듭니다.
453번도로(펀치볼로)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에 설치된
월운저수지~돌산령 평화누리길 안내판
비포장의 임도를 따라 산능선을 오르내리며 '월운저수지'로 향해 갑니다.
나즈막한 고갯길을 너머가고
능선을 너머서면 소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작은 계곡을 지날수 있게 만들어진 징검다리도 건너고
또 다시 능선을 올라 고개를 너머 갑니다.
고개를 너머서면 양구군 동면 월운리에 접어들고
16:05 큰소나무 아래 쉼터가 조성되어 있는 곳에 닿고
쉼터를 지나자 마자 DMZ평화의길은 좌측으로 휘어져
월운저수지로 향하게 됩니다.
소나무 쉼터에서 바라본 '월운저수지' 풍경
소나무 쉼터 풍경
월운저수지로 가는길
월운저수지에 닿고 저수지 둑 위로 오릅니다.
월운저수지 둑에 오르면
드 넓은 월운저수지가 구멍이 뚫린것 처럼 일부는 물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95% 이상은 꽁꽁 얼어있는 풍경을 봅니다.
월운저수지에서
월운저수지 둑 끝에 오늘 타고온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
DMZ평화의길27코스 안내판이 있는 곳이며 오늘 걷기의 종착지점 이고
안내판 뒤로는 피의능선 전적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월운저수지 둑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양구군 동면 월운리 풍경
월운리(月雲里)는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마을이며
일명 달운리라고도 하며 달운 또는 월운동이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운리라는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갯말, 뒷말, 뒷버덩, 암잣골, 양짓말 등이 있다네요.
월운저수지둑 끝에서 뒤돌아본 풍경
DMZ평화의길27코스 안내판이 보이고 그뒤의 사각정자 뒤쪽에
피의능선전적지로 오르는 계단과 안내판이 보입니다.
16:35 DMZ평화의길 종합안내도와 안내도 좌측 아래쪽에
DMZ평화의길27코스 QR코드가 보이네요
오늘 걸었던 DMZ평화의길27코스 걷기를 마칩니다.
DMZ평화의길27코스를 종료하고 피의능선전투 안내판 뒤쪽의
계단을 올라 피의능선전투 전적비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 닿습니다.
피의능선(Blood Ridge)전투는 국군이 휴전회담을 진척시키는
동시에 휴전에 대비하여 중요 요충지들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1951년 8월 18일부터 9월 5일까지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고방산리와
동면 월운리 일대인 벌어진 전투로 양구 북방의 983고지, 940고지
773고지를 잇는 능선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미국 《성조지(stars and stripes)》의
종군기자가 ‘피의 능선(Bloody Ridge)’으로 사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피의능선전투에서 당시 미 제1해병사단과
국군 제1해병연대는 해안분지 북쪽의 고지들에 대한 공격에 나서
924고지와 1026고지 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해안분지 서쪽에 있는 피의 능선을 방어하던 북한군은 퇴로가
차단되어 고립될 것을 우려해 940고지와 983고지를 포기하고
이른바 ‘단장의 능선(Heartbreak Ridge)’이라고 불리는 방산면 문등리와
동면 사태리 일대의 894고지·931고지·851고지로 퇴각했다.
이 전투에서 북한군은 1만5천여 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국군과 유엔군에도 2천7백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미군은 피의 능선 전투에서 4개 포병대대를 동원해 105mm와 155mm
대포 등으로 북한군 진지에 하루 평균 3만 발의 포격을 가했다고 전해진다.
훗날 이 전투는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후반부를 장식하기도 했다.
피의능선 전투전적비
1951년8월18일부터22일까지 한국군 제5사단36연대가 미제2사단에
배속되어 미군 전차, 포병9개 대대와 미공군 및 해군함포사격을 지원받아
42만여발의 포탄이 작열한 가운데 5일간의 전투에서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용감히 산화한 139명의 옛전우들의 넋을 추모하고 위로하기 위해
1980년11월11일 백두산부대에서 세웠던 이 비를 보완하여 현 위치에
새로이 세웠다고 한다.
피의능선전투전적비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