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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산행(2010~2012완)/백두대간(2010~2012완)

백두대간제19구간(지기재-신의터재-329m-무지개산-윤지미산-화령재)

by 山頂 2020. 6. 8.

 

백두대간제19구간(지기재-신의터재-329m-무지개산-윤지미산-화령재)산행

 

◈ 산행일시 : 2010. 09.04. 토. 날씨:맑음

◈ 산행구간 : 지기재-(4.6)-신의터재-(0.9)-329봉-(3.4)-무지개산-(3.5)-윤지미산-(3.5)-화령재

◈ 산행거리 : 약 15.9 km

◈ 산행시간 : 5시간10분(10:45 ~ 15:55)

◈ 산행참석 : 뫼솔5기 22명(산정,배낭여행,한요셉,들국화)

백두대간제19구간(지기재-신의터재-329m-무지개산-윤지미산-화령재)산행지도

 

산행메모

 

어제 제기동 한약방에서 도와 달라는 부탁이 있어서 하루종일 중노동을 했던 탓에

몸이 고단했는지 새벽에 모닝콜을 듣지 못하고 늦게 일어나게 되었고

아침도 먹지 못하고 간밤에 꾸려놓은 배낭을 챙겨 메고서 사당역으로 향했다.

서울 톨게이트 부근에 도달하기 전부터 추석명절을 앞두고 조상님 묘소에

벌초를 하러 가는 차량의 행렬이 마치 주차장을 가득 메운 것같이 혼잡스러워 보인다.

지난주에 우리 종친회도 벌초를 비를 맞으며 했었는데...

아마도 다음 주까지는 벌초를 하려는 사람들의 차량 행렬이 오늘처럼 도로에 붐비겠지

이번 19구간 산행은 지기 재에서 시작하여 신의터 재 와 윤지미산을 거쳐 화령 재까지 로

최고봉인 윤지미산이 538m, 제2봉인 무지개산이 438m에 불과할 정도로 대간종주

코스 중 고도가 가장 낮고 또 오르내림이 적은 육산이고, 

이들 산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대간 꾼이 아니면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태풍 곤파스가 태안을 거쳐 수도권을 강타하면서 많은 피해를 남기고

동해바다를 거쳐 소멸했다는 뉴스가 하루 종일 속보로 전해졌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유난히 햇살이 따갑다. 차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하는데...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 위의 가마솥에 들어가 있는 것 처럼 덥게 느껴진다.

오늘 산행구간은 백두대간 구간중 가장 낮은 고도와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릴 것이라는

예감으로 산행 깃점인 지기 재에서 마음 가볍게 산행을 출발한다.

지기재는 예전에 이 동네 뒷산에 도둑이 많아서 적기재라 불리웠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름이 변형되어 지기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지기재는 상주시 모서면 90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다. 지기재의 포도밭이 있는 마을 진입로를 따라

300m정도 들어가면 전봇대 옆에 백두대간 방향표지가 보이고

 오른쪽 소로 로 올라가면 능선의 대간길이 나온다.

사과 과수원과 농로를 따라 가다가 농로를 건너 능선으로 10분쯤 올라가 야산을 오르다

다시 내려서면 세멘트 포장도로를 만나고 세멘트 포장 도로를 따라 가다가

오른쪽 숲속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대간 길에 접에 들게 된다.

어제의 피로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오늘은 아예 후미에 쳐져서 천천히 산행을 하였다.

조그마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20분 정도 가니 안쑥밭 골 전답이 있는 곳에 이르고,

농로을 통과한 다음 완만한 능선길을 타고 20여분 정도 가면 송전탑이 대간 길에 세워져 있는

곳을 지나면 소나무 숲이 우거진 내리막 능선길이 이어지면서 차량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신의터재에 도착하기 직전 잘 다듬어진 묘소 앞 그늘에서 과일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돌비석에 백두대간 신의터재 라는 글 이 써 있는 신의터 재로 내려섰다.

신의터재는 상주시 내서면 낙서리와 화동면 이소리를 오가는 도로에 있는 고갯마루이며,

커다란 돌의 표시석과 나무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조그마한 소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신의터재 표지석에 새겨진 이곳의 유래는 "임난 이전에는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리었고

임난 때 의사 김준신(金俊信)이 이 재에서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으로 상주진에서 많은

왜병을 도륙하고 임진 四月 二五日 장렬하게 순절한 사실이 있은 후부터 '신의터재'라고

불리었으나 일제 때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어산재"로 불리게 되었고

문민정부 수립후 광복 五十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정기를 되찾고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교육의 장으로 삼고져 옛 이름인 '신의터재'로 다시 고치다." 라고 적혀 있다

이 재도 금강과 낙동강의 수계로 상주시와 화동면 소재지를 연결하는 포장도로가 나 있다.

백두대간 길은 신의터재 도로 건너 농로를 따라 우측으로 100m 정도 가면 아래쪽으로

지나온 대간길과 신의터재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서 이어진다.

능선으로 올라 낙엽송과 소나무, 잡목이 우거진 완만한 길을 따라 진행하면

좌측으로 선교리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20분쯤 가면 농로길 사거리에 이른다.

사거리를 지나 10분쯤 더 가면 전답이 나오고, 농로를 지나 더 진행하면

감나무 묘목이 있는 곳이 나온다. 아직은 어린 감나무지만 몇 년 후에

감이 열릴 때는 산 꾼에게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같기도.....

감나무 밭 옆 소로를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면 장자봉 정상 직전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서 우측 장자 봉으로 가는 길에는 잡목이 덮혀 있어 길이 보이지 않고,

대간 길은 좌측으로 90도 휘어지면서 북쪽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완만한 능선길을 가다 내려가면 안부사거리에 이르고,

10여분 정도 올라가면 무지개산 정상 안내판이 서있는 곳에 도착한다

표지판이 서있는 대간 길에서 200m 정도 오르면 무지개산 정상에 도달 하는데...

날도 덥고..지치고 무지개산을 다녀오려던 계획은 포기해 버리니

이름처럼 아름다운 봉우리인지는 알 수 없다

대간 길은 무지개산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90도 휘어지면서 서쪽으로 이어지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면 안부사거리에 닿는다.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면 대간길은 다시 북쪽으로 휘어지면서 지나온

무지개산이 올려다 보인다. 여기서 조그마한 봉우리에 올라서서 잠시 휴식한 후

비교적 완만한 능선길을 조금씩 올라가면서 30분 정도 가면

윤지미산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바위 봉우리에 다다른다.

산을 오르면서 바위 봉우리가 꼭 정상일것만 같았는데...정상이 아니다

538m의 얕은 산이지만 날씨가 워낙 더워서인지...

바위봉우리 까지 오르기가 힘에 겨워진다.

봉우리에 올라서 완만한 능선길을 7~8분정도 가면 윤지미산 정상에 닿는다.

이름만큼이나 예쁜 윤지미산은 원래 소머리 산으로 불렸으나 언제부턴가

‘세상을 포용하고, 두루 알아 맞히고, 인생 전반을 안다’라는 뜻의 윤지미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윤지미산 정상은 넓은 공터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방으로 잡목이 우거져 전망은 트이지 않는다

높이 538m의 윤지미산 정상에는 돌탑을 쌓아놓고 그 위에 작은 자연석에

먹으로 윤지미산 이라 써서 올려 놓은 정상석이 있고 그 옆에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 옆에는 사각형 모양으로 평편하게 돌을 깔아 놓은 자리가 있어서

쉬어가기 좋게 만들어 놨다

윤지미산 정상에서 대간길은 90도 꺽이어 서쪽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이라 비가 올 때나 눈이 얼어 있을 때는

주의해야 할 곳이다. 윤지미산에서 화령재로 내려 가려면 밧줄 신세를 져야 한다.

워낙 경사가 급해 서두르다간 몸을 상할 수 있다.

10분 정도 줄타기를 하고 나면 평탄한 산길이다.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걸음하기가 쉽지 않은 오지였으나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서울에서

반나절이면 손쉽게 닿을 수 있는 땅으로 바뀌었다.

급경사 길 과 완만한 능선길을 지나 내려서면 앞쪽으로 인삼밭이 보이고 농로가 나온다,

농로를 지나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가다 뒤돌아 보면 윤지미산이 올려다 보인다.

윤지미 산을 다내려와서 농로를 지나 다시 능선을 올라 설때는

다시 짜증이 날것 같다. 거의 다 왔고 내리막 길이 이어질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1km를 더가야 한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배낭속에서 물을 꺼내 한모금 마시고 심호흡을 해본다.

오늘 걸어온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왜 이리 힘이 들지... 어제의 피로 때문인가..?

나즈막한 산봉우리에서 내려서니 산을 절개하여

만들어 놓은 넓다란 임도를 만난다.

뒤쪽으로 올려다 보니 지나 내려온 윤지미산이 오뚝하게 솟아 보인다.

넓은 임도길을 따라 조금을 내려오면 다시 산 능선으로 오르게 된다.

조그마한 봉우리 서너개를 넘어서면 화령재 직전 능선에서

우측으로 청원~상주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의 소음을 들으며 조금을 내려서면

고속도로 위의 터널위를 지나게 되고 여기서 봉우리 하나를 올라섰다가

완만한 능선길을 내려가면 화령재 고갯마루에 닿는다.

화령재에는 커다란 백두대간 돌표시석과 백두대간을 알리는 안내도가 있고

오른쪽으로 팔각정자가 있다. 정자 안에는 화령정 건립기가 쓰여있는 편액(扁額)이

걸려있는데 빼곡히 쓰여진 글에는 신라초기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고갯길 내력이

담겨져 있고 아울러 이곳이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임을 알리고 있다.

화령재의 화령의 한문 표기가 火嶺 또는 化嶺으로 혼용되고 있었는데

내력을 읽어보니 신라시대부터 6.25동란 때까지도 化嶺이란 이름이 쓰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 언제부턴가 火嶺으로 바뀐 듯 싶은데 그 과정이 뚜렷하지 않다.

암튼, 화령재란 이름은 조선시대 상주시 화서면 소재지가 화령현 이었는데

이 화령현을 넘나들던 고개라 해서 화령재라 이름 지어졌다 한다.

화령재는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를 거쳐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천혜의 요새

화령재도 이젠 고만 고만한 산골 마을의 고갯마루로 변모했고 차량통행도 빈번하다.

어제의 피로가 남아 있었고 거기다 날씨도 덥고 산행거리가 길어

당초 예상했던 산행시간은 6시간 30분정도 소요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을 뒤엎고 5시간 10분정도 소요가 되었다.

처음에 많이 피곤했던 육신이 점심을 먹고 나서 부터는

적응을 잘해줘서 산행 속도가 붙었고

생각보다 완만한 산행길이였기에 그렇게 된 것 같다.

한여름 땀을 많이 흘리며 산행을 하고 나면 씻어야 하는데...마루금 산행을 하다보니

씻을 곳이 없어서 곤혹스럽다..땀을 많이 흘리는 나로선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다.

대충 수건으로 몸에 배어있는 땀을 닦아내고 팬티부터 모든 옷을 갈아 입기는 하지만

찝찝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엉덩이에 땀띠까지 나는 것 같기도 하구...

이제 가을의 문턱인 9월에 접어 들었으니 조석으로 느끼는 선선해지는 기온을

다음 산행에선 낮에도 느껴 봤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어느새 백두대간 산행이 1/3을 넘어 서고 있어 흐믓한 마음이다...

석양으로 지는 해가 대간을 향한 나의 열정 처럼 오늘따라 더욱 붉어 보인다.

 

- 산정 -

산행사진